배터리 전구체 등 대부분 소‧부‧장 품목 관세 제로
어렵게 국산화 성공 업체만 가격경쟁력 잃게 돼
할당관세 명확한 기준 필요…“정책 보완 필요”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정부가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국산화를 위한 이른바 소‧부‧장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관련 품목의 관세를 대폭 낮추는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있어 정책적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어렵사리 국산화에 성공한 업체만 상대적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소재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한 해 동안 배터리, 수소차, 반도체 등 신산업과 철강, 화학 등 주력산업의 소재, 부품, 장비 분야 60개 품목에 대해 할당관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내 산업의 보호를 위해 기본적으로 수입품목에 3~8%의 관세를 매기고 있다.

하지만 관세법에 따라 산업경쟁력 강화 또는 가격안정화 등이 필요한 산업용 원부자재에 대해서는 관세를 0~4% 정도로 낮추는 할당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

할당관세 대상은 산업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추천을 통해 기획재정부가 최종 선정한다. 1년 단위로 적용하며 매년 평가를 통해 연장 여부 및 신규 대상을 결정한다.

소재업계는 할당관세 대상이 대부분 소재, 부품, 장비 품목이라는 점에서 소·부·장 육성 정책과 모순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일례로 A 업체의 경우 국내 거의 유일하게 리튬이온배터리의 가장 핵심소재인 양극재 전구체를 기술개발에 성공해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품목이 올해부터 할당관세 대상에 선정되면서 8%의 관세가 사라졌다.

결국 어렵게 국산화에 성공한 A 업체만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 것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완성품 업체는 8%의 사라진 관세만큼 조달단가를 책정하기 때문에 그만큼 국산화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이라며 “할당관세 제도가 완성품 업체에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결국 수입을 조장하고 국산화 업체만 죽이는 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019년 7월 발생한 일본과의 무역분쟁을 기점으로 소재, 부품, 장비의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올해만 기술개발 등에 총 2조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강력한 육성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할당관세 대상을 정하는 기준도 모호해 자칫 특정업체 특혜 시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할당관세 대상 선정 기준은 크게 ▲국내 생산 여부 ▲전체 수요에 대한 공급 비중 ▲가격 급등 등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할당관세 품목이 국산화됐더라도 국내 수요 대비 공급량이 충분치 않으면 대상으로 선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선정된 품목 가운데 배터리 소재인 구리(동)박의 지난해 수출량은 전년보다 18.5% 증가한 4만1205t, 금액으로는 전년보다 14.1% 증가한 7억7700만달러를 기록했다.

구리박이 이미 국내에서 충분한 양이 생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당관세 품목으로 선정되면서 산업부의 선정 기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부는 사전에 할당관세 대상 품목을 공고하고 관련 업계 의견을 수렴한 뒤 정하기 때문에 업체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차전지의 경우에도 품목을 선정하기 전에 공고를 통해 업체들에 알렸고 별다른 이의가 들어오지 않아 선정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산업부는 규제 등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라는 점에서 업체들은 산업부의 공고를 통보로 받아들이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업계의 목소리이다.

산자부 차세대전지개발 총괄을 맡았던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정부가 소·부·장 육성 정책을 펴고 있지만 현재의 할당관세 제도는 수입을 조장하는 꼴이어서 정책적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산화에 노력하고 있는 업체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책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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