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위해 화학원료 나프타 대체
“현실성 없다” vs “그래도 가야 할 길”
“이상과 현실 사이 선택과 집중 필요”

LG화학의 나프타분해설비(NCC).
LG화학의 나프타분해설비(NCC).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대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탈원전이 필요하지만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원전이 필요하다는 게 탈원전 딜레마다.

이 딜레마가 석유화학에도 닥쳤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위해 석유 기반 원료인 나프타를 대체하겠다고 나섰지만 이 경우 세계 최고의 인프라와 경쟁력을 가진 국내 화학산업의 쇠퇴가 뻔하고 나아가 산업 전반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4일 정부 및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석유화학의 원료인 나프타(Naphtha)를 ‘혁신원료’로 전환할 계획이다.

나프타는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석유제품으로, 다시 나프타를 분해(크래킹)하면 플라스틱의 기초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이 생산된다. 쉽게 말해 지구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플라스틱이 나프타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나프타 자체가 많은 탄소를 함유하고 있고 특히 생산과정에서 다량의 탄소가 배출되는 만큼 이를 혁신원료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지난 15일 확정 발표한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에 따르면 나프타를 대체할 혁신원료는 ‘탄소와 수소의 화학적 반응 원료’ 또는 ‘생물기반 원료’이다.

탄소와 수소의 화학적 반응을 통한 원료는 포집한 이산화탄소(CO₂)에서 추출한 탄소와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한 수소를 결합시켜 만든다.

하지만 이 과정을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와 설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프타보다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생물기반 원료는 식물, 해조류 등 바이오매스를 기반으로 생산하는 것으로 현재도 세계 각국에서 많은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나프타를 대체할 만한 규모의 생물기반을 확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의 한목소리다.

일례로 2010년쯤 고유가 파동 때 휘발유 대체연료로 콩, 옥수수 기반의 바이오에탄올이 대량 생산되면서 곡물가격이 급등해 지구적 식량 위기가 찾아온 바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나프타 사용량은 하루 630만배럴.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나프타 사용량은 하루 120만배럴로 세계 사용량의 19%를 차지했다. 그만큼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이자 최고 경쟁력을 갖고 있다.

화학업계는 나프타 대체 계획이 국내 석유화학산업 경쟁력을 크게 떨어트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플라스틱 원료인 나프타를 다른 물질로 대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나프타분해설비(NCC) 기반 아래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된 콤플렉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화학산업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도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탄소중립이 확실한 글로벌 트렌드인 만큼 어쨌든 국내 석유화학산업도 그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화학산업의 탄소중립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전 세계가 그 방향으로 간다면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미래 화학시장에서도 우리나라가 선두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업력이 20년도 되지 않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지금은 세계 최고 자동차 회사로 성장한 사례를 국내 화학산업이 곱씹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탈원전 딜레마처럼 국내 산업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가 궁극적 목표를 뚜렷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공업화학을 전공한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현실적인 탄소중립을 위해 온실가스 포집 혹은 제거 공정을 개발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한다”면서 “채산성 있는 공정으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탄소중립에 집중할 것인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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