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금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할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 수립을 위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우리의 준비 수준은 정부의 의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독일의 기후변화 평가기관인 저먼워치(German Watch)가 올해 발표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의 우리나라 성적은 58개 대상국 중 55위이다. 온실가스 총배출량, 1인당 배출량, 에너지 소비효율 등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저탄소 사회 이전을 위한 우리나라의 준비 수준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국제사회는 우리나라에게 기후악당이라는 가혹한 평가를 하는 실정이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목표는 도전적이지만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적인 비전이 실현성과 지속가능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폭넓고 세심한 여러 가지 준비가 있어야 한다. 목표 달성이 단기에 이루어지기 어렵고 최소 향후 20년 이상의 장기간 동안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목표의 설정 뿐만 아니라 정책목표 달성의 수단의 실행가능성을 점검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의 경쟁력의 훼손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꼼꼼한 준비를 해야 한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에 제일 큰 걸림돌은 비용이다. 세계에서 9번째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석탄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가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통해 전력공급의 탈탄소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먼저 간헐적인 성격을 가진 재생에너지 공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계통에 막대한 투자가 요구된다. 또한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발전사업자에게 총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재생에너지로 채우도록 하는 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의 이행비용이 2015년 6,591억원(의무비율 3%)에서 2018년 1조 8,398억원(의무비율 5%)으로 해마다 증가하며,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의무비율이 28%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르면, 비용증가분은 상당할 것이다. 또한, 온실가스배출권 유상할당 3%가 적용된 2019년 한전의 온실가스 배출부담금은 0.7조원이며, 내년부터 적용되는 제3차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계획에 따라 유상할당이 10%로 확대되면 그 비용은 목표 증가치 3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요부문에서 에너지 효율과 소비자의 에너지사용 행태의 변화가 필요하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에 있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수송, 건물, 산업 등 전 분야에서 확산되고 있는 전기화로 인한 전력수요의 급증이다. 독일보다 3배나 높은 전력원단위(한국 0.42, 독일 0.15, 단위 kWh/$)와 매년 1인당 전력소비량의 최고치를 갱신하는 우리의 비효율적 에너지 소비를 고려할 때 이에 대한 대응책이 시급하다. 특히 전력소비 총량이 증가할 때나 제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에너지 효율의 개선과 소비자의 에너지 사용 행태의 변화를 위해서는 결국 소비는 시장에서 가격을 통해 조정된다는 기본적인 원리를 적용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의 전기요금은 우리나라보다 3배나 비싸며, 이는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에 소요되는 비용을 소비자가 부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목표는 우리의 이상을 반영할 수 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은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우리의 의지와 현실적 제약이 조화롭게 구성되지 못한다면 정책수단은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다양한 온실가스 감축수단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를 기반으로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기술수준을 식별하여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그린뉴딜도 이러한 원칙 하에서 집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당한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 역시 요구된다.

이종수 (서울대학교 기술경영경제정책 협동과정 교수)

프로필

▲서울대 공과대학 졸업 ▲SK 사회적 가치 자문위원회 위원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정책분과위원회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자유특구 심의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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