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출간된 토마스 프리드만의 ‘코드그린’과 2012년 제레미 리프킨의 ‘제3차 산업혁명’을 통해 스마트그리드는 대중적으로도 친숙한 이슈가 됐다. 2010년 우리나라는 스마트그리드 선도국가로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사업에 착수했고, 유럽과 미국에서도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ICT 기업들까지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스마트그리드 사업의 초기 열기를 고려한다면 공공부문의 투자가 민간부문에서의 비즈니스 생태계 활성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최근 그린뉴딜이라는 키워드로 새로운 모멘텀이 생기고 있으나 이러한 흐름이 민간 부문에서 지속가능한 밸류체인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필자는 2011년 이후 국제스마트그리드협의체(ISGAN) 활동에 참여하며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각국의 전문가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기술 중심의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지역 국가들은 사용자 중심의 사회과학적 연구에도 집중하고 있었으며 “스마트그리드를 포함한 모든 비즈니스는 커뮤니티 사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발표 내용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커뮤니티라는 용어를 에너지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10여 년 전 전기에너지 분야에서 커뮤니티, 사회적 자본, 사회심리학, 사용자 경험 등에 대해 강조하는 발표 내용은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우리는 스마트그리드 사업 선례를 통해 기술만으로 민간부문에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경험했으며 결국 소비자와 다양한 시장참여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미국의 대통령이자 전쟁영웅이기도 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 문제를 확장하라”라는 격언을 남겼다. 문제의 관점을 확장함으로써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린뉴딜과 디지털뉴딜 간의 상보성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전기요금 및 규제 개선에 대한 기존 노력은 지속돼야 하겠으나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며 그 중의 하나가 데이터 기반 접근이 될 수 있다. 데이터를 에너지시스템 운영 및 효율 개선의 도구로 활용했던 기존의 보조적 관점에서 벗어나 에너지 데이터 자체를 정보 콘텐츠 기반의 서비스화 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통신산업과 달리 스마트그리드로 전력산업의 진화를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했던 배경에는 일반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할 만한 ‘재미’가 부재하다는 측면이 크다. AI와 빅데이터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에너지 데이터 자체는 지루할 수 있으나 이러한 데이터가 생활 밀착형 부동산, 금융 데이터들과 만날 때 새로운 재미를 제공할 수 있다. 에너지는 모든 분야와 연계되며 그런 측면에서 이종 분야를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 에너지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있어 전기, 열, 가스 등 이종 에너지를 연계하는 기존 관점도 중요하나 에너지와 비에너지 부문의 정보 연계를 통해 소비자의 관심을 얻기 위한 보다 창의적인 시도가 많이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와 비에너지 부문의 결합은 전통적인 하향식(top-down)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사업자들과 데이터를 제공하는 소비자들간 상호작용에 기반한 수평적·상향식(bottom-up) 접근이 필요하다.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공유경제가 활성화된 것은 우연이 아니며 정보와 데이터가 일반 사람들과 공유됨으로써 기존의 수동적 소비자가 능동적 프로슈머로 전환되는 자생적 커뮤니티 기반의 플랫폼이 활성화된 결과이다.

커뮤니티란 다양한 참여자들이 수평적으로 상호교류하고 주도적인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로 정의된다. 커뮤니티는 산업혁명 이전 사회의 기본적인 경제조직이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소비 경제에서 비경제적 친목모임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최근 생산과 소비의 융합, 취향의 다양화와 SNS를 기반으로 소비자의 피드백이 중요한 평판경제가 도입되며 커뮤니티는 다시 중요한 경제적 지위를 회복하고 있다. 에너지 빅데이터가 데이터 경제 관점에서 가치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기술적·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 커뮤니티 관점의 참여유인 설계가 필요하며 에너지 빅데이터 플랫폼은 그러한 활동을 촉진하는 협업 커뮤니티로서 기능해야 할 것이다.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박사 ▲홍익대 전기공학박사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연구교수 ▲한국스마트에너지협회 부설연구소장 ▲(주)커넥탈리스트 대표 ▲대한전기학회 전기설비부문회 학술이사 ▲ 한국전기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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