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박진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문 앞에 야만인들이 진격해 왔다. 그간 변방에서 에너지전환과 에너지신산업이라는 명분을 쌓고 힘을 길러오던 환경 군단과 데이터군단이 이제 그린+디지털 뉴딜의 기치를 치켜들고 연합군을 구성해 전력산업계의 중원을 향해 맹렬하게 진격해 온 것이다. 환경군단은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대응이라는 명분을 거머쥠으로써 국내적 지지는 물론 해외 각국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데이터군단은 이제 스마트그리드 구축 수준에서 벗어나서 VPP, V2G, P2P, 마이크로그리드, 딥러닝, 빅데이터 등을 통해 전력생태계를 데이터 기반의 플랫폼으로 재편할 기세다.

이들 야만인 군단이 연합할 수 있게 된 것은 제레미 리프킨이 국회토론회 기조연설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디지털화된 세계의 커뮤니케이션 인터넷은 디지털화된 재생에너지 인터넷과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디지털 뉴딜은 새로운 전력생태계를 향한 불가역적 흐름이다. 해외의 추세를 따른다면, 대한민국 전력산업계를 지배해 온 세력들은 머지않아 이들 야만인들에 의해 유린될 운명인 것이다.

환경+데이터 군단은 그린+디지털 뉴딜이 곧 실현될 수 있는 양 들떠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앙시앙 레짐의 잔당들에게는 가공할만한 최후의 보루가 있다. 그간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성채와 같이 난공불락의 위용을 자랑해 온 CBP 체제가 그것이다. 한전, 전력거래소, 그리고 전력당국의 삼각동맹은 CBP의 요새 안에 틀어박혀 얼마가 걸릴지도 모를 공성전을 치를 태세를 갖추고 있다. 환경+데이터 군단이 설사 요새 안으로 진입하는 데에 성공하더라도, 최종적 승리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삼각동맹의 세력들은 전력산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업자들을 무간지옥의 함정으로 유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구역전기, LNG, 석탄, 집단에너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순진한 사업자들을 같은 방식으로 약탈하고 그들의 희망을 좌절시켜 왔다.

관건은 그린+디지털 뉴딜을 통해 전력산업 생태계에 최첨단 하드웨어를 구축하더라도 현행 전력시장체제의 소프트웨어로는 구동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제레미 리프킨의 지적처럼 “한국은 여전히 구식 에너지 체제에 묶여 있(다)”.

전력당국의 지휘를 충실하게 따르는 전력거래소와 한전이 gross pool을 통해 장악하고 있는 전력거래의 무역로에서 발전사업자와 전기소비자 간 직접 거래의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국내에서 PPA 방식으로 RE100이 추진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더욱이, 전력거래소는 헌법과 전기사업법에 부합하지 않는 각종 계수를 통해 전력거래와 전력계통 운영과정에서 발산되는 가격신호를 교란하고 있다. 고귀한 조선사대부의 후예는 상인들의 이윤추구를 특혜인 양 죄악시하고 어떻게든 자의적으로 평가되는 비용 이상의 투자회수를 막으려 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요인 제거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전력생태계가 질식해가는 것은 애써 눈감고 있다. 전력당국은 전력산업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하며, 정치적 풍향에 따라 약탈적 가격 책략을 사용하는 데 어떠한 주저함도 없다. 오늘 아침의 진지한 제도개선 노력이 저녁에도 유효할 것인지 그 누구도 담보해 주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미래의 에디슨, 미래의 테슬라가 탄생할 수 있겠는가?

단언컨대, 현재의 정치적 명분과 힘만 믿고 정부정책과 보조금에 의존하는 사업방식으로는 그린+디지털 뉴딜에 미래가 없다. 정부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사업의 장기적 생존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데이터 군단은 투자실행에 앞서 그린+디지털 뉴딜 사업자들이 자생할 수 있는 전력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발전사업자와 전기소비자, 그리고 전기소비자와 전기소비자 간 직거래를 제한하는 규제를 폐지함으로써 전력시장 안팎에서 계약방식이 가능하도록 하는 한편 전력시장이 사업자의 이윤확보를 가능하게 하는 정상적 가격신호를 만들어내도록 변화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전기사업법을 개정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고 전력시장운영규칙의 모순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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