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석유, 유럽-신재생 엇갈린 선택 속 한국은?
사상 초유 마이너스 유가, 코로나19 타격 대변
OPEC “2분기 세계 수요 1726만 배럴 감소”
하반기 이후 시장 회복, 충분한 재고 완충 역할

한국석유공사가 참여하고 있는 UAE 할리바 유전 개발.
한국석유공사가 참여하고 있는 UAE 할리바 유전 개발.

석유산업 200년 역사 이래 최대 위기…“변해야 산다”

현대 경제를 이끌어 온 석유산업이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수요 감소로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까지 발생하면서 200년 역사의 석유산업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 석유산업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정유 4사는 1분기에만 총 4조원가량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으며, 석유 수요도 30%가량 감소했다.

세계 석유 메이저들의 전략은 나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석유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인 반면, 유럽 기업들은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다. 국내 석유업계는 각자의 방법으로 탈석유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석유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진단해 본다.

◆사상 초유 마이너스 유가가 대변하는 코로나의 충격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 전파 속도가 다른 바이러스와는 비교과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중국은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올해 1월 우한시를 폐쇄했으며, 전국 주요 도시에 자택 격리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이미 전 세계로 퍼져나간 상황이었다. 우리나라도 바이러스가 확산되자 2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에 들어갔으며, 지역적 사건으로 치부하던 미국과 유럽도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되자 3월부터 국가 간 이동금지 및 전국민 자택격리 조치에 들어갔다.

사람 이동과 물류가 완전히 멈추면서 석유 수요는 급격히 감소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6월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1분기 세계 석유 수요는 전년 동기 대비 하루당 635만 배럴 감소했고, 2분기에는 1726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반기에는 수요가 다소 회복돼 올해 총 수요는 전년보다 908만 배럴(9.1%) 감소한 9059만 배럴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 4월 20일에는 코로나19가 석유산업 어떤 타격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의 대표 유종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5월물 선물가격이 마이너스 37.63달러에 거래된 것이다. 원유 선물을 파는 사람이 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파는 것도 모자라 웃돈을 주고 상품을 판매한 것이다.

마이너스 유가가 발생한 이유는 더 이상 석유를 저장할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로 미국 내 석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저장시설이 꽉 차게 된 상황에서 만기가 다 된 선물상품이 저장 공간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판매자가 웃돈을 주고서라도 판매를 강행한 것이다.

마이너스 유가는 해프닝처럼 하루 만에 종료됐지만, 1850년 석유산업이 탄생한 이래 처음 발생한 일이었다.

◆봉쇄 해제로 수요 증가…내년 공급 부족할 수도

연초 배럴당 60달러 대를 달리던 국제유가는 3월 말 20달러 초반대까지 하락했다. 그래도 20달러 선이 무너지진 않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러시아와 사우디의 감산 합의가 무산되면서 결국 4월 중순 10달러 초반대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속절없이 추락하는 유가에 결국 러시아와 사우디는 OPEC+ 협의체를 통해 감산에 합의했다. 5∼6월 두 달 간 산유량을 하루당 970만 배럴 줄이고, 올해 7∼12월까지 하루 770만 배럴, 내년 1월부터 2022년 4월까지 하루 58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최근에는 7월까지 5월 감산량을 유지하기로 했다.

최근 세계 각 국이 이동 제한 및 자가 격리를 해제하고 경제활동이 다시 증가하면서 석유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6월 보고서에서 올해 석유 수요 전망치를 기존보다 하루당 50만 배럴 상향한 9170만 배럴로 예측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상향한 것이다.

IEA는 “글로벌 봉쇄조치가 완화되면서 중국과 인도 등에서 상당한 수요회복이 이뤄진 점을 근거로 올해와 내년 석유수요를 전월 전망치 대비 모두 상향했다”고 설명했다.

IEA는 나아가 내년에 석유 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OPEC+의 감산 합의에 이어 미국과 캐나다 업체들이 경제성 하락으로 원유 생산을 중단하면서 하루당 총 1180만 배럴 공급이 중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급격한 국제유가 상승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전히 세계 석유 재고수준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는 최근 미국 원유 재고가 3월 중순 이후 최저 수준인 5억3300만 배럴을 기록했다면서도 이는 5년 평균치보다 11.4% 많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EIA는 6월 전망에서 WTI 선물 가격이 1분기 37.44달러에서 2분기 42.66달러, 3분기 45.98달러, 4분기 49.03달러로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석유메이저 엇갈린 선택…미국은 다시 석유, 유럽은 신재생

에너지전환이라는 대세적 흐름 속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세계 석유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석유 메이저기업들의 미래 전략도 나뉘고 있다. 대체로 미국 기업들은 시장 회복을 기대하며 석유에 다시 투자하는 모습이고, 유럽 기업들은 이참에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대표적 석유기업인 엑슨모빌(ExxonMobil)은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사업 역량을 분산할 이유가 없다며 가이아나 및 LNG(액화천연가스)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또 다른 미국 석유기업인 셰브론(Chevron)도 엑슨모빌과 미래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며 석유 중심의 사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반면 영국의 비피(BP)와 프랑스 토탈(Total)은 현금흐름 감소와 자본투자액 삭감에도 불구하고 저탄소 사업에 대한 투자를 그대로 유지하며 저탄소 정책추진과 사업 분산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에니(Eni)는 2050년까지 자사 순탄소배출량을 80% 줄이겠다는 목표 달성을 위해 해외운영사업을 천연가스와 에너지진화 부문으로 나누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천연자원 부문은 상류자산, 에너지효율 개선, 탄소포집, 유가스 탐사 및 개발, 생산, 판매를 맡는다. 에너지진화 부문은 발전과 화석연료의 바이오연료 전환과 판매, 수소산업 등을 맡는다.

세계 석유메이저 기업들의 엇갈린 전략은 국내 석유기업들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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