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맥스터 증설
지역주민으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에서 공론화 통해 결정될 듯
내년 11월 임시저장시설 포화 예상...내달 말까지 착공 못 하면 ‘가동 중단’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내 사용후핵연료 조밀건식저장시설(맥스터).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내 사용후핵연료 조밀건식저장시설(맥스터).

‘‘맥스터! 꼭 필요하기에 더욱 안전하게 관리합니다’.

지난 20일 경북 경주시 동쪽 끝 해안에 자리한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에 들어서자 이런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정문에서 출입증을 교환하는 곳에서부터 본부를 오가는 차에도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보안 절차를 거친 뒤 월성원자력본부 안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월성원자력본부 협력기업이 사용후핵연료 조밀건식저장시설(맥스터)과 관련해 지지를 표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함께하겠습니다’ 등의 글귀는 본부 내 이곳저곳에서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일부 플래카드에는 맥스터의 증설이 무산되면 월성원전의 가동이 멈춘다는 등 맥스터와 관련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플래카드를 뒤로 하고 월성 1~4호기와 신월성 1·2호기, 임시저장시설이 보이는 전망대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월성원자력본부 내 각 구역에 설치된 실시간 방사능 수치가 눈에 들어왔다.

본부 내 방사능 수치는 같은 시간 서울에서 측정된 수치와 비슷한 수준인 0.1μSv(마이크로시버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망대 내부에 전국의 원전 현황을 안내하는 현황판에는 지난해 12월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에 따라 수정된 월성원전 현황을 설명하는 스티커만 새것으로 붙어 있었다.

캐니스터와 맥스터가 있는 임시저장시설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전망대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에 원통형 캐니스터가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고 오른쪽에 일반 건물처럼 생긴 맥스터가 두 줄로 자리해 있었다.

맥스터는 겉보기엔 일반 창고 건물과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상부슬래브, 벽 등의 차폐두께는 각각 1.08m, 0.98m에 달한다고 한다.

자신을 두고 벌어지는 세간의 논쟁을 아는지 모르는지 육중한 직육면체 구조물인 맥스터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수원 관계자는 “월성원자력본부는 캐니스터와 맥스터의 표면방사선량률을 매일 측정하고 있으며 표면·공기 오염도 역시 매주 측정하고 있다”며 “본부 건물이 맥스터에서 직선거리로 100m에 있을 정도로 본부에서도 맥스터의 안전성을 신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자로 내에서 연소를 마친 사용후핵연료는 기본적으로 각 호기에서 습식저장시설을 활용해 저장하는데 경수로형 원전과 달리 중수로형 원전은 사용후핵연료가 매일 발생해 습식저장시설 포화 시점이 빨리 도래한다.

국내 유일 중수로형 원전인 월성 1~4호기 내에서 수용할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모두 수용할 때까지도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만들어진 게 캐니스터와 맥스터 등 임시저장시설이다.

따라서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건설과정을 거쳐 운영 중인 월성원전 맥스터는 현재까지는 국내에서 유일한 맥스터다.

16만2000다발을 저장할 수 있는 캐니스터에 16만8000다발을 보관할 수 있는 맥스터를 합쳐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의 수용 능력은 총 33만다발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임시저장시설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는 지난 3월 말 기준 32만2200다발로 포화율은 97.63%에 달한다.

한수원은 내년 11월이면 이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율 10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으며 건설에 필요한 시간을 역산해 늦어도 다음달에는 추가 맥스터가 착공돼야 월성원전 가동중단 사태를 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주민 의견수렴 절차가 어떻게 결정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한수원은 가동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 의견수렴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착공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미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운영변경허가를 받은 월성원전 맥스터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토대로 정부가 정책적인 결정을 내리면 경주시에 공작물 축조신고 절차를 거쳐 즉시 본공사에 돌입할 수 있다.

기자와 만난 한수원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임시저장시설을 비롯한 원전시설의 안전성, 그리고 아직 중간저장시설이 없는 국내에서 원전 운영을 위한 맥스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월성원자력본부 관계자는 “저도 한수원 직원이기 전에 사람이고 한 가정의 가장”이라며 “본부 내에 들어서는 모든 시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부에서 일하고 근처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를 습식저장시설에서 처음으로 꺼내 건식저장시설로 옮긴 지 거의 30년이 돼가는 시점에 맥스터의 안전성이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용후핵연료를 ‘커피를 내린 뒤 남은 커피 찌꺼기’에 비유하며 원전의 가동을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 홍보관 내부에 표시된 건식저장시설 실시간 방사능 수치. 0.094μSv(마이크로시버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일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 홍보관 내부에 표시된 건식저장시설 실시간 방사능 수치. 0.094μSv(마이크로시버트)를 기록하고 있다.

맥스터와 관련해 주민 의견수렴 절차가 지연되자 월성원자력본부 인근 마을주민들도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경북 경주시 감포읍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만난 최학렬 위원장은 기자에게 양면으로 인쇄된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맥스터 증설 여부는 공론화를 통해 주민이 직접 결정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에는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과 관련한 공론화 절차 등을 비롯한 설명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돼 있었다.

최 위원장은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가 지난해 11월 출범했는데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며 “이 종이도 너무 답답해서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제작해 주민들에게 배포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에서 맥스터 증설을 반대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이자고 주장하는 데 대해 최 위원장은 정부의 의사결정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정부에서는 그게 통했을지 몰라도 현 정부는 주민들이 반대하면 설득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다”며 “이번 지역실행기구 공론화 과정에서 반대로 결정되면 맥스터 증설은 없던 일이 되고 월성원전은 멈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마을 내에 맥스터 증설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면서도 이와 같은 접근법의 차이 때문에 혹시라도 반대로 결정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월성원전과 인접한 마을은 월성원전과의 ‘상생’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하는 최 위원장은 보상을 요구하더라도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일단 찬성한 뒤에 맥스터가 건설되는 기간에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역실행기구는 참여를 희망하는 동경주 지역주민 2000명, 그 외 경주시민 1000명 등 3000명을 모집하고 그중 연령·성별 등을 고려해 150명의 시민참여단을 선정, 시민참여형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지역 의견을 수렴한다는 방침이다.

150명의 시민참여단은 동경주 지역주민 100명, 그 외 경주시민 50명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여 원자력계는 경주시민을 대상으로 월성원전 맥스터를 홍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원자력노동조합연대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경주시민의 압도적인 찬성을 호소했으며 원자력계 시민단체들도 21일 지역 내 갈등을 부추기는 외부 세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을 진행한 원자력계 관계자들은 맥스터 증설이 반대로 이어지면 월성원전은 설계수명이나 안전성·경제성과는 별개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로 인해 무기한 가동이 중단될 것이며 이에 따라 경주시 지역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희철 한수원노조 위원장은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원전 3개 호기가 정지되면 2018년도 기준 지방세 427억원, 사업자 지원사업비 151억원, 경주지역 계약 117억원 등이 사라져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지역경제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의 포화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지역 내 의견수렴 절차도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 상황 때문이었을까. 경주에서 만난 한수원 직원, 원자력계 노동조합 관계자,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답답한 모습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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