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을 앞두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이른바 ‘조중동’은 일제히 더불어민주당이 미래통합당을 큰 폭으로 앞서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들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는 기사들을 쏟아 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식이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여론조사의 신뢰도 문제가 다시 부각됐다. 20대 총선 때보다 개선된 선거제도가 도입됐지만, 신뢰도 등에서 여전히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신동아 2020년 4월 9일 기사-제목: 당선자 예측 여론조사 실효성 없다)”

“여론조사를 가장한 여론 조작은 언젠가 수사로 그 전모가 밝혀져야 한다. (조선일보 1월 18일, 제목: 여론조사를 가장한 여론조작)”

“객관성과 신뢰도가 확보되지 않은 여론조사가 남발되면서 온라인에선 ‘여론조사 무용론’마저 나온다.(중앙일보 2019년 11월 5일, 제목: 수상한 여론조사···응답자 절반이 文투표층이었다)”

이른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신문들의 이러한 집중적 불신론 제기는 선거를 6개월 가량 앞두고 시작되어 선거 직전까지 계속 되었으나, 선거 결과는 처음으로 선거 예측보다 여당이 크게 앞섰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선거조작론이 득세하고, 보수 신문 사설에서는 선관위 불신론까지 불거졌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관리를 생명처럼 여겨야 할 선관위의 신뢰도와 공정성이 심대한 타격을 입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중략) 선관위의 준비 소홀과 선거관리의 수준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군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이러니 일부 보수 인사와 대학을 중심으로 4·15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음모론이 번지고 있다. (중앙일보 5월 15일 사설, 제목: 선관위, 투표용지 분실 진상 밝혀 신뢰 되찾기를)”

‘타진요’ 사건이 생각난다. 2009년, 가수 타블로가 졸업했다는 미국 스탠퍼드대 석사 학력이 위조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는데, ‘타진요’ 즉,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카페 회원을 중심으로 석사학력 위조 의혹을 제기하는 활동이 이어졌다.

법원이 타블로의 스탠퍼드대 졸업 사실을 인정하고, 타진요 회원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학력위조 논란은 수그러들었지만, 타블로가 재학시절 성적표, 대학교의 공식 확인서 등을 공개해도 일부 누리꾼들은 조작됐거나 동명이인이라며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했다.

여론조사는 그 당시의 민심을 측정하는, 즉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민심 측정 도구이다. 가령 어느 환자가 병원 엑스레이 사진에서 무언가 이상 전조가 발견되었는데, 엑스레이 사진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의사의 진단을 불신하고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그 환자는 병을 치료할 수 없게 되고 심각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유튜브에서 비롯된 여러 음모론을 레거시 미디어, 그것도 가장 유력한 보수 언론들의 유명 칼럼니스트들이 이어받아, 여론조작 음모론, 심지어 검찰수사까지 운운하다보니, 미래통합당 등 보수 정당들은 여론을 믿지 못하고, 야당이 여당을 앞서고 있을 거라는 환상을 통해, 황교안 대표를 최고의 험지로 내보내고, 홍준표 전 대표를 이 지역, 저 지역 돌리다 무소속 출마케 하고, 많은 유력 정치인들을 기존 지역구에서 빼내서 다른 지역구 돌려 낙선시켰다. 정말이지 ‘지기 어려운 선거’에서 ‘폭망’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복 타고 났다’라는 이야기가 재론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미래통합당은 경선 과정에서 국내에서 선거, 정치 여론조사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리얼미터와 한국리서치 등을 친여 조사기관으로 낙인찍어 조사기관 선정 과정에서 배제하기까지 했다. 여론조사 불신론을 폈던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시 홍준표 대표도 하지 않았던 이상한 결단이었다.

급기야 김무성 전 대표는 일부 보수 유튜버들을 향해 "돈벌이 하려는 썩은 놈들"이라며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비판의 대상이 된 유튜버들은 김 전 대표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보수의 분열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