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적 하도급 방지 목적’ 분리발주, 소방시설 분야 제외 ‘눈살’
3년째 잠든 ‘장정숙 의원 발의’ 소방시설공사업법, 20대 국회 ‘사망 선고’ 임박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현장(제공: 연합뉴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현장(제공: 연합뉴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는 7일 현재 원인 규명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수직적인 하도급 체제가 거론되고 있다.

공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 불공정한 하도급 체제는 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거론돼왔다. 이에 이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떠오른 것이 분리발주다. 공사의 각 요소를 차지하는 토건, 전기, 통신, 소방시설 등의 분야에서 전문적인 업체를 따로 선정해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통합발주는 대기업이 담당하면서 중소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형태로 진행됐다. 하도급은 또 하도급을 낳았고 마치 자식에 손주를 보듯 끊임없는 하도급 행진이 이어졌다. 가장 아래 단계의 하도급업체는 원 공사비의 절반도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전은 언감생심 남의 세상 이야기였다.

이 같은 불공정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분리발주는 현재 전기와 통신 분야에서는 정착하고 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전기공사의 경우 전기공사업법 제3장(도급 및 하도급) 제11조(전기공사 및 시공책임형 전기공사관리의 분리발주) 1항에 따르면 전기공사는 다른 업종의 공사와 분리발주해야 한다.

또 2항에 따르면 시공책임형 전기공사관리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시공책임형 건설사업관리 등 다른 업종의 공사관리와 분리발주해야 한다.

물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예외가 있기는 하다.

분리발주를 어긴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처벌 규정도 있다.

하지만 소방시설 분야에서는 아직 분리발주가 정착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국회 차원의 시도는 있었지만 이마저도 5월이 지나면 매몰될 가능성이 크다.

장정숙 의원(민생당·비례대표)은 2017년 5월 18일 천정배·전혜숙·김종회·박찬대·김광수·박주현·이동섭·김삼화·김중로 의원 등과 함께 소방시설공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소방시설공사의 경우 현행법상 다른 업종의 공사와 분리해 도급하도록 규정돼 있지 않아 주로는 건설공사 등에 포함돼 일괄 도급된 후 하도급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소방시설공사의 품질 저하가 우려되고 도급을 받은 자의 책임시공 원칙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돼 왔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방시설공사를 다른 업종의 공사와 분리해 도급하도록 규정을 마련해 전문 소방시설업자가 도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방시설공사의 품질을 올리고 관리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발의 목적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본회의는 고사하고 소관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법안 통과 여부를 논의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통과가 무산됐다는 게 장 의원 측 전언이다.

즉 3년여 동안 유의미한 진척 없이 이 법안은 끝내 20대 국회 막바지까지 왔다. 20대 국회는 오는 29일 막을 내린다. 이후에는 자동 폐기된다.

물론 행안위에서 법안 논의가 이뤄진 뒤 본회의까지 통과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4월 임시국회는 오는 15일까지 개회돼 있다. 15일이 지나면 처리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즉 극한의 갈등을 겪고 있는 여야 원내대표가 본회의 개최에 극적으로 합의하고 이를 행안위에서 조속히 논의해 본회의까지 올려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시나리오다.

한국소방시설협회에 따르면 이 희박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국회에 인력을 파견했다. 제21대 국회에서 법안을 다시 발의해 장기간의 회의를 거쳐야 하는 긴장의 연속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한 절실한 행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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