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되고 싶으세요? 판사 부인이 되고 싶으세요?”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대뜸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여성은 판사가 되고 싶다고 답하는 듯하다. 그런데 “부인이 판사라면 남편은 백수다. 즉 둘 중의 한 명은 판사지만 다른 한 명은 백수다”라며 다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질문 하면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지만, 여성들의 표정은 좋지 않다. 고민하다 “내가 잘돼야지”라고 답하면서 판사가 되고 싶다는 여성이 대부분인 듯하지만, 판사 부인이 좋다는 여성도 있다. 아마 20년 전에는 이 비율이 지금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무능한 남편이 싫냐, 바람피우는 남편이 싫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며 짜증 섞인 어조로 답하는 여성도 있다.

만약에 총각들에게 “판사가 되고 싶으세요? 판사 남편이 되고 싶으세요?” 이렇게 질문하면 거의 대다수는 “판사가 되고 싶다”고 답하며 이런 질문이 난센스라는 표정을 짓는다. 고민하거나 심각한 표정을 짓는 남성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몇몇 경제학자들은 인류 역사에서 세탁기의 발명이 컴퓨터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세탁기가 가사 부담을 경감시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도왔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경제학자들은 역사 발전 단계에서 페미니즘을 중요시하고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현재 일부 아랍 국가들의 낮은 여성 인권과 미국에서 여성 선거권이 인정된 것이 100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해할만하다.

24년 전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페미니즘 영화가 상영됐다. 영화에서 주인공 영선은 훌륭한 영화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명 영화감독의 부인이 되는 길을 택하고 헌신적으로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그런데 성공한 남편은 주위의 다른 여성들과 아내를 비교하면서 남편에게 집착하는 아내를 수치스럽게 여겼다. 절망한 영선은 결국 자살했다.

그러나 최근에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 영화 속의 남편은 육아휴직까지 생각할 정도로 가정적이다. 24년 사이 페미니즘 영화 속 남편은 많이 변했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도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서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최근 영화와 관련해서 페미니즘이 불편하다는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감상평이 화제다. “여자로 살면서 충분히 행복하고 대접받고 살 수 있는 것도 많은데 영화는 부정적으로 그렸다”면서 “페미니스트들은 여자의 권력을 모른다, 유난스럽게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밝혔다.

이글은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많은 공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는 억압받으며 사는 여성들도 많고 페미니스트들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력(?)을 모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약자를 배려하고 동등하게 끌어올리는 것은 우리가 그냥 지나쳤던 소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대체로 여성들이 남성보다 키가 작다. 그래서 서울 지하철 9호선 손잡이는 남성용(170cm)과 여성용(163cm)이 번갈아 설치되어 있다. 이런 배려 덕분에 여성들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키 작은 남성들도 혜택을 보고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에는 무엇보다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행복한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을 도와줬으면 좋겠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누리고 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라!” F. 스콧 피츠제럴드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아버지의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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