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는 주유소를 기반으로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B2C 방식의 경영을 진행해왔다.
정유사는 주유소를 기반으로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B2C 방식의 경영을 진행해왔다.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은 차량을 운전하면서 마주하는 주유소에서 브랜드를 목격할 수 있다. 즉 이들 정유사는 휘발유, 경유 등 자동차용 기름을 판매하면서 소비자와 바로 거래하는 전형적인 B2C(Business to Consumer) 업종이다.

정유사는 ‘기름집’이라는 별명과 함께 취업 준비생에게는 꿈의 직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높은 연봉과 준수한 사내 복지, 그리고 안정적인 고용 형태에 따른 취업 시장 내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정유사는 정유를 통한 실적은 상당한 부진을 겪고 있다. 저공비행을 유지하고 있는 국제유가로 인한 정제마진 악화가 주된 원인이다. 쉽게 말해 원유를 구매한 가격과 비교해 정유 제품을 판매하는 가격이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영업이익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와 함께 미국-중국 무역 전쟁에 따라 최대 시장인 중국의 수요가 급감했고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사 아람코 석유 시설 폭격 등 불안한 중동의 정세도 정유사 실적 악화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 계열사인 SK에너지는 재고 손실이 이월되면서 3분기 100억여 원의 적자가 예측된다.

GS칼텍스는 지난 2분기 실적 결과 정유업계 2위 자리에서 물러났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 등도 영업이익이 40~50%가량 줄었지만, GS칼텍스의 영업이익 감소 폭이 더 컸기 때문이다.

S-OIL은 아예 적자로 돌아섰다. 2분기 실적 결과 영업‘이익’ 대신 영업‘손실’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즉 영업이익이 –905억 원, 당기순손실이 –1474억 원으로 마이너스(-) 부호가 붙고 말았다.

그나마 현대오일뱅크가 2분기 실적에서 선방해 업계 2위로 뛰어오른 게 고무적이다. 2분기 영업이익 1544억 원으로 GS칼텍스의 1334억 원을 제쳤다. 하지만 이 영업이익도 결코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라는 전언이다.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의 실적 악화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연봉의 대명사인 정유사의 급여도 올해는 크게 줄었다. 지난 8월 각 정유사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SK에너지, GS칼텍스, S-OIL의 정유 부문 올해 상반기 1인당 급여는 평균 6675만 원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8031만 원보다 17% 감소한 수치다.

S-OIL은 지난해 상반기 정유 부문 1인당 급여가 8054만 원이었으나 올해는 6166만 원으로 23% 줄었다. GS칼텍스 정유 부문 급여는 지난해 상반기 7140만 원에서 올해 6160만 원으로 역시 14% 줄었다. SK에너지는 8900만 원에서 7700만 원으로 13% 줄었다.

3사 모두 앞 자릿수가 줄어든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직원이 느끼는 불안감이 상당하다”고 귀띔했다.

취업 시장에서 정유사는 교대 근무가 많고 근속연수가 길며 매출과 비교해 직원 수가 적다는 이유로 다른 업계와 비교해 급여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확실한 실적 전망으로 인해 취업에 대한 매력이 점점 떨어지는 형국이다.

이에 정유사들도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인력을 감축하는 IMF 시대의 구조조정이 아니다. 비정유 분야로의 진출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여섯 번째)이 지난 6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복합 석유화학 시설(RUC/ODC) 준공 기념식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부총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따.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여섯 번째)이 지난 6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복합 석유화학 시설(RUC/ODC) 준공 기념식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부총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따.

◆ S-OIL 잔사유 고도화 설비 확대 준공식에 ‘文 대통령’ 참석

S-OIL은 지난 6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복합 석유화학 시설(RUC/ODC) 준공 기념식을 열었다. 이 행사는 일반적인 기업의 일정을 아득히 넘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 시설은 사우디 국영 석유사인 아람코에서 개발한 기술을 적용, 저부가가치의 잔사유를 휘발유와 프로필렌으로 전환하고 이를 다시 처리해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인 폴리프로필렌(연산 40만5000t), 산화프로필렌(연산 30만t)을 생산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 분야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5조 원 투자해 이 시설을 만들었다. 사우디아람코가 S-OIL의 단독 대주주가 된 이후 국내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첫 사업이다. 한국과 사우디 양국의 경제협력 측면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전언이다.

이 같은 의미를 반영하듯 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사우디와의 친분을 확인했다. 그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부총리와 준공식에 동행했다.

대통령의 방문이라는 의미와 함께 S-OIL은 핵심사업인 정유와 함께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OIL 측은 “석유화학 비중이 지난해 8%에서 13%로 확대해 핵심사업 분야에서 사업 다각화를 실현했다”면서 “올레핀 제품이 종전보다 4배 이상 증가한 37%를 차지하게 돼 파라자일렌(46%), 벤젠(17%) 등과 함께 석유화학 사업에서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S-OIL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RUC/ODC 프로젝트를 잇는 석유화학 2단계 프로젝트를 위해 아람코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24년까지 7조 원을 투자하는 S-OIL의 석유화학 2단계 투자인 SC&D(Steam Cracker & Olefin Downstream)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나프타와 부생가스를 원료로 연간 150만t 규모의 에틸렌 및 기타 석유화학 원재료를 생산하는 스팀크래커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올레핀 다운스트림 시설 등으로 구성된다.

SK이노베이션이 울산CLX에 건설하고 있는 VRDS
SK이노베이션이 울산CLX에 건설하고 있는 VRDS

◆ SK이노베이션, 이제는 ‘정유화학사’…‘주유소’ SK에너지 外 화학 부문 선방

SK에너지와 함께 SK인천석유화학, SK종합화학 등 화학사를 품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분기 실적과 관련, “전반적인 업황 부진 속에서도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에 기반해 전(前) 분기 실적 및 시장 전망치를 큰 폭으로 상회하는 실적 선방을 해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13조1036억 원, 영업이익 4975억 원을 기록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 매출액은 2550억 원(2.0%), 영업이익은 1664억 원(50.3%) 증가한 실적이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역마진에 가까운 정제마진, 역내 화학제품 공급 증가와 글로벌 무역분쟁 등 최악의 경영 환경에도 불구하고, 정유-비정유 부문의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

특히 화학 사업은 파라자일렌(PX) 시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2분기 전체 영업이익의 약 37%에 해당하는 1845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는 전언이다.

SK에너지는 현재 울산CLX에 VRDS를 건설하고 있다. 감압 잔사유 탈황설비(Vacuum Residue Desulfurization)인 VRDS는 감압증류 공정의 감압 잔사유(VR)를 원료로 수소첨가 탈황 반응을 일으켜 경질유 및 저유황유를 생산하는 설비다.

SK이노베이션 김준 사장은 “2분기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선제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노력으로 각 사업이 안정적인 성과를 기록, 회사가 업계 내 차별화된 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허세홍 GS칼텍스 사장(가운데)이 취임 후 대전 기술연구소를 방문해 연구설비를 둘러보 고 있다.
허세홍 GS칼텍스 사장(가운데)이 취임 후 대전 기술연구소를 방문해 연구설비를 둘러보 고 있다.

◆ GS칼텍스 ‘4세대’ 허세홍 체제 출범 후 신사업 속도 확장

GS칼텍스는 지난 1월 4세 경영시대를 출범한 허세홍 대표이사 사장이 취임한 후 정유사에서 종합에너지기업으로 거듭난다는 의지를 행보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이미 허세홍 사장은 취임 직후 여수공장과 대전 기술연구소 등 현장을 찾았다. 직원들과 만남에서 허 사장은 미래 신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기존사업인 정유 분야와 석유화학를 확장하면서도 신규사업을 개척하는 ‘투 트랙’ 행보를 과시하고 있다.

허 사장은 올레핀 분야에 집중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오는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올레핀 생산시설(MFC) 건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허 사장이 올레핀 사업이 성공하면 신사업을 구축함은 물론 기존사업을 끌어 올리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GS칼텍스는 친환경 에너지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전기차 충전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전국 주요 도시 14곳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했다. 지난 5월에는 서울 시내 7개 주유소에 100㎾급 ‘전기차 급속 충전기’ 8대를 설치했다.

현대케미칼 생산 공장 전경
현대케미칼 생산 공장 전경

◆ 현대오일뱅크, 아로마틱 증설 2600억 투자 등 영업익 다변화 행보

현대오일뱅크는 자회사인 현대케미칼과 현대코스모 등을 통해 아로마틱 석유화학 공장 증설에 나서고 있다. 총투자비는 2600억 원이다.

아로마틱은 혼합자일렌을 원료로 파라자일렌과 톨루엔 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산업 분야다. 합성섬유, 건축자재, 기계부품 소재, 페트병 등을 제조할 수 있다.

현대케미칼은 1000억 원 규모의 설비 보완과 증설공사를 진행했다. 현대코스모는 내년 6월 완공을 목표로 1600억 원 규모의 공장 증설 계획을 확정했다.

공사가 완료되면 아로마틱 제품인 파라자일렌 생산능력은 현재보다 18만t 늘어난 연간 136만t을 달성할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아로마틱 공장을 통해 영업이익 개선을 꿈꾸고 있다. 사측에 따르면 증설로 인한 연간 영업이익 개선 효과는 860억 원이다. 또 오는 2022년 올레핀 석유화학 공장인 2조7000억 원 규모의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까지 정상 가동되면 전체 영업이익에서 석유화학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서 50%로 상승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아로마틱 제품은 신흥 시장인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에서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파라자일렌 수요는 향후 10년 동안 매년 4% 정도 늘어날 전망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