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속 전력선통신(PLC; Power Line Communication) 분야에서 새로운 통신방식이 고안돼 단체표준화가 추진됐지만 특정기업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국산 PLC칩 제조사를 중심으로 기존 KS-PLC(KS X ISO/IEC 12139-1) 방식보다 성능이 뛰어난 ‘IoT PLC’ 통신기술을 개발했다. PLC는 광케이블 대신 전선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개발된 신개념 통신방식이다.

현재 한전 AMI사업 등에 사용되고 있는 ‘KS-PLC’는 2000년대 초반 개발됐기 때문에 최신의 통신기술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특히 땅속에 매립된 전선의 통신성공률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대체방안 마련이 시급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개발자들은 IoT PLC의 단체표준화를 추진했지만 KS-PLC의 특허권을 소유한 ‘젤라인’이 이해관계인임을 자처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일반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자는 단체표준의 수정을 요구하거나 합의를 시도하는데 반해 젤라인 측은 구체적인 이유를 언급하지 않은 채 반대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이해관계인과의 합의가 없으면 단체표준 제정이 어렵다는 현행 규정을 악이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선 IoT PLC가 단체표준으로 제정돼 한전사업에 참여하게 될 경우 KS-PLC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젤라인이 단체표준화를 반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향후 다른 신기술의 단체표준 제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국가기술표준원이 ‘이해관계인의 범위’를 두고 직접적 이해관계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나 경쟁기업 등 잠재적 이해가 걸려 있는 자도 해당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불씨로 남게 됐다. 이 말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이의제기를 한다면 그 어떤 신기술도 단체표준으로 제정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모두가 잠재적 소비자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적·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단체표준 제정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러한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젤라인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개발된 통신기술이 국가사업 적용은 물론 해외수출의 길마저 사실상 막혀버렸다. 중앙회의 적극적인 행정이 아쉬운 부분이다. 불합리한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면 중앙회는 이번 사안의 이면을 면밀히 검토해 최선의 선택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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