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선로에 사용되는 초고압용 전력기기.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음.
송전선로에 사용되는 초고압용 전력기기.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음.

2015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맺어진 국제협약을 계기로 전 세계는 이전 시대와는 다른 큰 변화를 맞고 있다. 훗날의 역사는 파리기후변화협약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지 않을까.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모든 산업이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력에너지 분야도 마찬가지다. 온실효과를 불러오는 육불화황(SF6)의 사용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특히 개폐장치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SF6가스는 전력차단에 사용되는 개폐기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중전기기 업계는 지구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의 2만3900배에 달하는 SF6가스를 대체할 새로운 친환경 전력기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후발주자로 뛰어들며 시대의 흐름을 좇고 있다.

◆한전 주도로 친환경개폐기 개발 진행…배전용은 ‘OK’ 송전용은 ‘글쎄’

정부는 우리나라가 2030년 총 8억506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전망하고 이 중 37%를 감축, 배출량을 5억3575만t으로 낮추겠다는 자발적 감축 목표안을 세워놓은 상태다.

2014년을 기준으로 한전이 배출한 온실가스 양은 총 140만t에 달한다. 이 중 78%를 SF6가스가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전은 온실가스 사용중단이라는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2000년대 중반부터 친환경 개폐기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왔다. 친환경 개폐기 개발은 송전과 배전라인으로 구분된다. 송전용 제품은 초고압제품으로 분류돼 고난이고의 기술이 요구되는 게 특징이다.

대표적인 배전용 친환경개폐기는 2013년 추진된 에코개폐기(가공용)와 에폭시절연개폐기(지중용)를 꼽을 수 있다. 두 제품 모두 SF6가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전이 지난 2010년 5월 발표한 ‘배전용 개폐기 운용방안’에는 이들 배전용 친환경개폐기 구매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 2013년부터는 가스개폐기 구매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에코개폐기 규격을 확정하는 시기가 당초 계획보다 늦어졌고 기업들의 개발 또한 지연되면서 아직까지 가스개폐기 사용이 전면 중단되진 않았다. 하지만 매년 친환경개폐기 구매를 늘려가고 있는 추세라 빠른 시일 내 배전라인에는 SF6가스를 사용하는 개폐기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전은 2016년에 ‘IoT(사물인터넷) 기반 자기진단형 친환경 가스절연 개폐기’ 과제를 진행됐다. 이 개폐기는 25.8kV급으로 배전 가공과 지중용으로 사용된다. SF6가스를 친환경가스로 대체하는 것은 물론 실시간으로 내부고장 여부를 파악하면서 자기진단을 실시해 이상여부를 알리는 게 핵심이다.

이 과제는 최근 인텍전기전자가 지중용 개폐기 개발에 성공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인텍은 에코개폐기에 이어 자기진단형 친환경 개폐기까지 잇달아 제품을 내놓으며 친환경개폐기 개발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

◆글로벌기업 친환경개폐기 개발기술 선도…국내기업은 후발주자

송전선로에 사용될 초고압용 친환경 개폐기는 2016년 한전이 170kV 진공차단기(VI) 개발에 본격 착수하면서 추진됐다. 한전이 개발하는 170kV 친환경 초고압 진공차단기술은 SF6가스와 함께 유압·스프링방식의 조작기를 사용했던 기존의 170kV 가스차단방식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SF6 대신 친환경 가스를 사용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고, 고속도 전자석 조작기를 사용, 부품 축소(20%)에 따른 고장감소와 유지보수 비용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

SF6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개폐장치는 크게 SF6 대신 다른 친환경가스로 절연 및 차단하는 방식과 진공차단기(VI)로 차단하고, 드라이에어로 절연하는 방식(DAIS) 등으로 구분되는데, 우리나라는 SF6 대체가스 분야에서도 원천기술이 없고, VI 기술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실정이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친환경 차단기 연구가 배전용 제품에 집중돼왔다면 ABB, 지멘스, GE 등 글로벌 업체들은 친환경가스를 사용한 145kV급 스위치기어의 개발과 실증을 끝내고, 170kV급 상용화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

에너지기술평가원에 따르면 ABB는 SF6가스를 대체하기 위해 지난 2012년 세계 최초로 72.5kV급 Live Tank형 이산화탄소 가스차단기를 개발했고, 145kV급도 이미 개발을 완료했다. 지난 2015년에는 170kV 이산화탄소 혼합가스 차단기를 출시했으며, 스위스의 변전소에서 실증까지 완료했다.

지멘스는 72.5kV급 이상에서는 VI를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업계의 통설을 깨고, 145kV급 GIS에 VI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145kV급 개발에 성공한 이상 170kV급은 기술적으로 차이가 없어 개발은 시간문제다.

GE는 배전급을 중심으로 스위치기어 소형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GE와 알스톰의 합작 사업부인 그리드솔루션이 3M과 함께 개발한 g3(Green Gas for Grid)가스를 적용한 145kV급 스위치기어를 개발했다.

1980년대 말 상용화에는 실패했지만 SF6가스를 대체한 이산화탄소 스위치기어 시제품까지 이미 만들었던 일본 역시 도시바와 히타치 등을 중심으로 친환경 스위치기어 개발에 한창이다.

◆170kV급 친환경개폐기 개발 일진전기·LS산전 ‘급부상’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72.5kV급 DAIS를 일부 기업에서 개발했으며, 145kV VI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170kV급의 경우는 독자개발 대신 글로벌 업체와 손을 잡는 형태로 추진하고 있다.

일진전기는 지멘스와 손을 잡고 170kV 친환경 GIS 개발에 나섰다. 지난해 8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18 국제 대전력망 기술 협의회’ 세계 최초로 170kV급 친환경 진공차단기(VI)를 공개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LS산전은 최근 친환경가스 분야에서 가장 떠오르고 있는 GE와 협력했다. 절연매질로 SF6가스를 사용하지 않는 400kV 가스절연모선(GIB)과 170kV GIS를 공동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GE는 3M이 개발한 NOVEC 4710에 CO2를 섞어 새로운 절연가스인 ‘g3(일명 지큐브)’를 만든 회사다. 이렇게 개발된 g3가스는 지구온난화지수가 380에 불과해 SF6가스 대비 98%의 온실효과를 줄일 수 있다. 또 절연과 차단성능도 기존 SF6와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차세대 절연가스로 각광받고 있다.

GE의 이 같은 원천기술 확보로 LS산전은 170kV급 친환경 개폐기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받고 있다.

일진전기와 LS산전이 글로벌기업과 손을 잡았다면 국내 대표적인 중전기기 회사인 현대일렉트릭과 효성은 자체 기술로 170kV급 친환경 개폐기 개발을 진행 중이다. 친환경가스인 드라이에어에 대한 기초적인 절연성능 연구를 끝냈고, 현재 g3의 절연데이터, 차단특성 연구를 준비 중이다. 올 연말 개발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효성중공업 역시 올해 안으로 친환경가스에 기반을 둔 170kV급 개폐기 개발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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