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업 축소․SOC 사업 대전환에 제조업계 존폐 기로
전문가, “산업구조 재편 유도하되 피해 최소화 지원 필요”

건설경기 불황의 여파가 산업계 전반을 흔들고 있다. 대규모 건축사업이 대폭 축소된 가운데 정부가 SOC 사업 방향을 생활 밀착형 SOC로 전환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월 국내 SOC 사업의 대대적인 방향 전환을 예고했다. 기존 건설․토목 중심의 대규모 SOC에서 생활 밀착형 SOC로 선회한다는 게 골자다.

문제는 국내 경제와의 상호 영향성이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대규모 건축사업이 경제성장을 앞당기는 촉진제 역할을 해왔다. 건축사업을 단순히 국민의 편의성 증대 관점에서만 논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새 정부 들어 건축사업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이후 산업계 곳곳에선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건축사업의 후방산업 분야인 중소 제조업계의 어려움이 크다. 이미 업계에선 분야를 불문하고 ‘기업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모든 지표 ‘뒷걸음질’…공공․민간수주 4년래 최저치 기록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상호)이 지난 4월 발표한 ‘월간건설경기동향’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국내 건설기성은 공공과 민간 모두 부진한 모습을 보여 전년 동월 대비 7.6% 감소, 4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했다.

특히 공공기관 기성은 전년 동월 대비 16.5% 감소해 지난 2017년 10월부터 시작된 감소세를 1년5개월째 이어갔다.

향후 건설경기 전망도 밝지 않다. 올해 2월 기준 건설수주 규모는 전년 동월 대비 9.6% 감소한 8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건설수주에서 공공과 민간부문의 부진한 실적이 실제 지표로 나타난 것이다. 건설수주 실적 향후 경기변동을 예측할 수 있는 선행지표다.

발주자별 수주 실적을 살펴보면, 공공수주는 토목수주가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토목 부문이 전년 동월 대비 21.4% 감소한 1조9000억원에 그치면서 공공수주 총 실적은 2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수주액은 2월 실적으로는 6년래 최저치다.

민간수주는 토목과 비주택 건축수주 모두 부진했다. 주택수주는 지난해 2월 수주가 부진한 데 따른 기저효과의 영향으로 전년 동월 대비 7.8% 증가했으나, 토목․비주택 건축수주는 각각 9.9%, 23.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수주 공정 중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한 것은 도로와 토지조성 부문이다. 지난 1월 도로 및 교량 수주는 전년 동월 대비 100.9% 급등했지만 2월에 61.5% 급감하며 토목 수주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또 토지조성 수주도 30.3% 감소해 토목 공종의 하락세를 부추겼다.

재건축·재개발 부문도 급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2월 재건축·재개발 수주 규모는 전년 동월 대비 90.4% 감소한 783억원으로 7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매출 반토막”…존폐 기로에 선 중소 제조업체들

건설업계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1위인 삼성물산은 건설부문 다운사이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1분기에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동월 대비 2.6%와 34.2% 감소하자 건설부문 의존도를 낮추고 사업 모델을 다각화하는 전략 이행에 착수한 것이다.

대기업 중심으로 유사한 사업 재편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소 제조업체들은 변화의 물결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사업 체계가 대기업의 하청·재하청 구조에 맞춰져 있다 보니 주도적으로 사업 분야를 전환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또 중소 제조업체 특성상 규모가 작아 투자를 동반하는 사업 다각화 또한 시도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특히 이러한 어려움은 배전·조명·전선 등 전력 기자재 제조업계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 품목은 건축 사업에서 가장 마지막 공정에 투입되는 제품들로, 건설경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한 수배전반 제조업체 A사의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민수 시장이 죽어버린 뒤 올해는 관수시장까지 물량이 대폭 줄었다”며 “1분기에 매출이 반토막 나 마이너스 수주를 하며 근근이 버티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자 아예 업역을 전환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기존의 제조업만으로 정상적인 기업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선제적으로 사업 재편에 나선 것이다.

무정전전원장치(UPS) 제조업체인 B사 대표는 “올해 발주가 아예 끊기면서 UPS 제조는 가망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제조업은 포기하고 업체 규모를 줄여 유지보수 업체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 실내 등기구 제조업체 C사 대표도 “신규 택지개발이 전무한 상황이라 조명 수요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며 “올해 하반기에 전기공사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전문가 “생활 SOC, 경기 진작 효과 적어…다각적인 지원 필요”

최근의 건설경기 악화와 관련 전문가들은 급작스러운 건축사업 축소에 따른 예견된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규모 건축사업 축소를 골자로 한 생활 SOC 확대 방침이 산업계가 대비할 만한 여력을 갖추기 전에 급하게 추진돼 역효과를 낳았다는 얘기다.

국내 건축사업 정책 전문가 박수진 박사(전 한국건설연구원 연구위원)는 “국내 경제는 1980년대부터 대규모 건축사업에 의존해 압축 성장을 거둔 모델”이라며 “모든 산업 시스템이 기존 모델에 맞춰져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건축사업을 줄이니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그는 특히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생활 SOC 확대 사업의 경우 경기 진작 효과가 미미하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박 박사는 “다수 업체가 사업에 참여하는 대규모 건축사업과 달리 생활 SOC는 규모나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생활 SOC의 경우 도심지에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게 골자라, 시행지를 찾거나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구조가 4차 산업혁명 중심으로 이행하는 가운데 유가 상승 등 해외경제의 변화, 건축사업 감소 등이 삼중고가 돼 산업계에 작용하고 있다”며 “산업구조 개편을 유도하되 그 기간 중에 중소기업들에 필요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건설경기 전망과 관련해선, “최소 2년 이상 주춤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정부 차원에서 예비타당성 제도 개선, 민간투자사업 확대 등의 정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실제로 적용돼 효과를 내기까지는 2년여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