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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승강기안전 외면하는 건설사 무리한 공기단축 ‘논란’
납기 맞추려고 휴일·야간작업 ‘무한반복’…‘안전’·‘품질’ 보장 못해
건설현장 공사용 승강기 운행 ‘만연’…‘중고품’으로 입주민에게 제공
승강기설치 하도급 ‘위험의 외주화’가 안전사고 부추겨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승강기를 설치한 후 입주민에게 제공되기 전까지 공사용 자재와 작업자를 나르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승강기 설치를 전문으로 10년 이상 일해 온 김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8시까지 아파트 건설현장으로 출근한다. 발주처로부터 건설공정이 늦어져 준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승강기를 서둘러 설치해달라는 지시를 받았다. 무려 20일이나 단축해야 한다. 오늘부터 밤 11시까지 야간작업은 물론 토요일에도 일을 해야 끝마칠 수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은 다른 나라 얘기다.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 표준공기를 지켜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말은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말이었다. 일거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김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발주처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파트너와 어둡고 좁은 승강로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했지만 야간수당은 나오지 않았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안전장치 작업을 건너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납기를 맞추려면 주6일 근무도 모자랐다. 사고에 대한 위험을 떠안고 김씨는 내일도 컴컴한 승강로로 향한다.

실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승강기설치업자의 하루일과다. 건설사의 비용절감과 적기준공을 위해 승강기 작업기간을 단축하는 일이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보복인사’는 물론 일거리가 없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게 승강기설치 업계의 전언이다. 건설사의 무리한 납기단축이 업계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승강기설치 하도급이 초래한 ‘위험의 외주화’ 문제도 포함돼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건설사 ‘비용절감·빠른 준공’ 위해 승강기설치 무리하게 단축
건설현장에선 건물의 뼈대가 완성되고 나면 승강기를 설치, 이를 통해 인력과 공사용 자재를 운반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 비용과 공기단축을 위해 리프트를 대신해 승강기를 사용한다는 게 승강기설치업계의 지적이다. 임대해서 사용하는 리프트 대신 이미 완성한 승강기를 사용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승강기가 설치된 이후에는 내·외부 마감공사 등 마지막 공정만 남아 있어 이 단계에서라도 리프트를 철거해야 리프트 임대비용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건물 외벽을 따라 움직이는 리프트를 계속해서 사용할 경우 모든 공사가 끝난 후 리프트를 떼어내고 그 부분에 외장 공사를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 들어가고 공기도 그만큼 늦어지게 된다.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승강기 설치기간 단축을 종용하는 이유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승강기를 공사용으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건물 외장 마감을 두 번 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 되고, 이는 비용증가와 공기지연으로 이어지게 돼 건축공정상 불가피하다”며 “이후 승강기를 새 것처럼 점검·수리하는 ‘오버홀(Overhaul)’이라는 과정을 거쳐 입주민에게 제공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건설사는 현장설명회를 할 당시부터 승강기 설치기한을 정해놓는데 업체에서 요구하는 표준공기보다 30~40%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하도급업체인 설치업자에게 무리하게 기간단축을 요구하다 보니 적정표준공기는 무시되고, 안전사고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설치공정 단축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른바 ‘갑의 횡포’가 자행된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사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원도급사인 메이저 승강기업체를 불러 설치업체 길들이기에 나선다”며 “설치업자는 갑-을-병 중에서도 ‘병’에 해당하기 때문에 갑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업체로 교체되거나 향후 작업비용이나 추가일감을 받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설치기간 단축 ‘부실시공·안전사고’ 부추겨…공사용 승강기도 ‘논란’
건설사의 무리한 기간단축 요구는 사고위험성을 키우고, 승강기 품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복되는 야간·휴일업무로 인해 작업자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시간단축을 위해 안전장치 작업을 건너뛰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승강기 설치를 위한 표준공기는 무시된 채 작업자들은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리게 된다. 부실시공에 따른 품질하락은 사고와 고장발생으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하게 된다.

업계에 따르면 매년 건설사에 적정표준공기를 제시하지만 일부 현장만 제외하곤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표준공기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승강기를 설치하라고 독촉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 경우 이른바 ‘돌관작업’, 즉 야간작업이 수반된다. 건설현장에서 ‘돌관’이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로 사용된다. 주로 준공 기한을 맞추기 위해 마지막 스퍼트를 올릴 때나 연달아 해야 하는 공정일 때 인력·장비·건자재를 집중적으로 투입해 24시간 작업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하지만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마저도 턱없이 모자라 주6일, 주7일 근무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심지어 이러한 추가근무 비용도 온갖 이유를 들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본지가 입수한 한 건설사의 시방서에 따르면 30층 높이의 건물에 들어갈 승강기(16~23인승 기준) 1대를 설치하는 데 65일에서 75일을 요구하고 있다. 업계는 이보다 2배가량 긴 150일이 적정하다고 평가한다. 건설사는 작업공정을 무려 절반이나 줄인 셈이다.

업계에선 이러한 납기단축 관행이 모든 건설현장에서 만연돼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불합리한 관행은 메이저 승강기 제조사의 수주경쟁에서 비롯된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 의견이다. 현대, 오티스, 티센크루프, 미쓰비시 등 메이저 제조사들이 건설사로부터 승강기를 수주받기 위해 ‘초단기 납기’를 경쟁도구로 사용하며, 건설사들 역시 이를 악이용한다는 지적이다.

임오순 승강기설치협회장은 “승강기 제조사는 건설사의 단납기 요구에 귀를 막고 중간이익만 챙긴 채 하도급업체에 설치공사를 떠넘기고 도급비용마저 삭감하고 있다”며 “표준공기를 지키지 않는 건설사의 횡포로 인해 설치업자들은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주52시간 근무를 항상 초과해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임 회장은 “승강기는 좁은 승강로에서 2인이 작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교대근무를 할 경우 비용감당은 누가 할 것인지도 의문”이라며 “건설사의 납기단축은 부실시공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작업자를 사지로 내모는 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승강기를 공사용으로 사용하면서 불거지는 품질하락과 이에 따른 사고와 고장발생이다.

업계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현장별로 보통 적게는 2개월에서 많게는 6개월가량 작업자와 자재, 장비를 운반하기 위해 승객용 승강기를 공사용으로 사용한다. 건설현장이다 보니 평소 승객용으로 사용될 때보다 승강기나 부품의 내구성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사용된 승강기는 준공을 앞두고 말끔하게 청소된 후 새 제품처럼 입주민들에게 제공된다.
하지만 이미 ‘중고품’이 된 승강기가 운행 중 사고나 고장이 발생할 경우, 그 원인이나 책임소재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불똥이 설치업자에게로 튈 수 있다.

◆승강기설치업계 “적정표준공기 지키고 주52시간 정착돼야”
승강기설치업체들은 건설현장에서의 ‘납기단축 관행’이 근절되기를 희망한다. 건설사들이 적정표준공기만 지켜줘도 작업자의 안전은 물론 부실시공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처럼 표준공기보다 30~50% 이상을 줄이는 관행은 건설사-승강기제조사-설치업자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없다는 게 설치업계의 설명이다.

또 업계는 설치현장에 주5일(40시간) 근무가 정착되길 바라며, 4월 1일부터 시행된 근로시간 단축(주52시간)제도 역시 준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건설사에서 자체적으로 설정한 공기계약과 잔업, 특근, 돌관작업 등 추가근무를 강요하지 않을 것을 촉구했다.

임 회장은 “승강기는 열악한 환경에서 고소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건설 현장보다 위험도가 훨씬 높다”며 “전국 4000여명의 작업자들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며 승강기를 설치할 수 있는 근무환경이 조성되고, 적정표준공기가 제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도 건설현장을 300명 이상 사업장으로 보고 근로시간단축이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에 나서주길 바라며, 건설사-승강기제조사-설치업체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여건이 확립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건물 골조공사가 끝난 후 승강로에서 승강기를 설치하고 있는 모습.
작성 : 2019년 04월 17일(수) 09:51
게시 : 2019년 04월 17일(수) 13:50


이석희 기자 xixi@electimes.com        이석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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