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유지된 ‘과도기적 체제’+깜깜이 정책
규제 걷어내고 법률에 근거한 정책 필요

2001년 이뤄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의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18년이 흐르는 시간 동안 문제가 터질 때마다 땜질만 하다 보니 누더기가 됐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아예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8일 열린 ‘15차 전력포럼’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났다.

◆이해득실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현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중간 단계에서 멈춘 채 18년을 끌어왔다는 점이다.

정부가 1999년 발표한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에는 발전 분야를 시작으로 도매·소매까지 단계적으로 경쟁을 도입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발전부문 분할 이후 임시로 변동비반영시장(CBP) 체제를 유지하다가 배전부문 분할 이후 양 방향 경쟁입찰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배전부문 분할 과정에서 구조개편이 중단되면서 발전시장만 경쟁하는 ‘과도기적 체제’가 계속 유지됐고, CBP 체제 역시 18년 동안 유지되는 등 과도기적 체제가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과도기적 체제가 뿌리를 내리면서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이 생겼다고 지적한다.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팀장은 “뒤로 가느냐 앞으로 가느냐의 선택인데 결국 앞으로 가야 한다”며 “그러나 시장참여자들의 이해득실을 따지다 보니 못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개방됐는데 정책은 깜깜이…법적 분쟁 증가할 것

무엇보다 시장이 개방됐는데도 정책이 주관적이고 변동성이 크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특히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한 발전소 진입 규제, 발전공기업의 수익구조 안정화에 도움이 되는 정산조정계수, 용량요금(CP) 산정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다.

김성수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는 “현행 전력시장은 석탄이나 원자력 등 기저발전기를 돌리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라며 “정부가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발전소 진입을 통제하고 있어 기저발전기가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11년 순환정전 사태 이후 대규모로 석탄발전기 진입을 허가했고, 이 과정에서 민간사업자가 대거 시장에 진입했다.

이런 정부의 깜깜이 규제는 발전시장에 민간기업 진입이 늘어나면서 ‘법적 분쟁’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날 주제토론을 맡은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앞으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LNG 직도입이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LNG로 전환하는 석탄발전기에 대해 발전사업허가 우선권을 줄 가능성이 큰 가운데 발전사업권 확보 경쟁에서 새로 짓고자 하는 LNG 발전소에 대한 차별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LNG 직도입을 통해 연료비에서 차이가 발생하면서 치열한 변동비 경쟁이 발생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현행 변동비 산정 방식의 불공정성과 불투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박 변호사는 전망했다.

◆시장을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시장’을 통해 현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환경이 바뀌고 기술이 진보하는 등 시장화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며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몇 년이 걸려도 좋으니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도 강제적 재무계약(Vesting Contract)을 도입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현재 우리 전력시장은 규제의 악순환에 빠졌다”며 “전력시장운영규칙과 같은 규제를 걷어내고 깔끔하게 법률 절차를 따르자”고 제안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