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94 이상일 경우 고급 휘발유로 분류
품질 상향평준화, 사명 경쟁 시대로 전환

S-OIL의 구도일 광고.
S-OIL의 구도일 광고.

현재는 비중이 많이 낮아졌지만 1990년대 정유사들은 자사 휘발유 브랜드를 광고 전면에 내세워 마케팅에 나선 바 있다. 유공의 엔크린, 호남정유의 테크론 등은 ‘품질 좋은 기름’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 지갑을 공략했다.

전형적인 B2B(Business to Business) 업종인 석유 분야에서 주유소는 유일하다시피 한 B2C(Business to Consumer) 체제다. ‘품질 좋은 기름’ 또한 고객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일환이다.

하지만 다른 B2C 업종인 식품, 유통, 자동차 등에 비해 석유는 ‘체감’의 정도가 낮아 ‘과연 좋은 기름이란 무엇이냐’는 의문에 직면한다. ‘내 차에 엔크린을 넣든 테크론을 넣든 별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어떤 정유사의 휘발유를 넣을지가 소비자의 고려 대상으로 떠오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주유소의 경쟁력은 휘발유 브랜드보다는 접근성, 서비스, 친절도 등에 의해 좌우되곤 한다.

유공 엔크린 광고.
유공 엔크린 광고.

그럼에도 정유사는 ‘좋은 기름’을 강조한다. ‘좋은 기름’의 본질은 ‘옥탄가(octane rate)’에 있다.

자동차 엔진 연료로 사용되는 휘발유의 특성을 나타내는 수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중 하나가 옥탄가다. ‘노킹(knocking)’에 대한 저항성을 뜻한다.

자동차 엔진은 각각 ‘목표 옥탄가’가 있다. 이 목표에 미달하는 옥탄가를 보유한 휘발유를 사용하면 노킹이 발생한다.

노킹이란 적절하지 않은 연료, 즉 옥탄가가 낮은 연료로 인해 엔진 점화가 부적절한 시점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저회전에서는 딱딱 소리가, 중·고회전에서는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난다. 딱딱 소리가 노크하는 소리와 비슷해 노킹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옥탄가가 높을수록 노킹 발생 확률이 줄어든다. 정유사들이 ‘품질 좋은 기름’으로 홍보한 것은 자사 휘발유 옥탄가가 높다는 것을 뜻한다.

옥탄가 수치는 RON(Research Octane Number), MON(Motor Octane Number), AKI(Anti-Knock Index) 등의 방식으로 측정한다. RON 방식은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하며 대한민국도 사용국 중 하나다. MON 방식은 실제 상황에 조금 더 부합하는 방식으로 더 높은 RPM(분당 회전수) 상태에서 부하를 준다. AKI는 RON과 MON의 평균으로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에서 사용한다.

가장 좋은 수치를 100으로 하면 국내 옥탄가가 91~93 선에서 형성된다는 전언이다. 이 수치를 넘은, 94 이상의 휘발유는 ‘고급휘발유’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호남정유 테크론 광고.
호남정유 테크론 광고.

S-OIL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들이 ‘좋은 휘발유’ 경쟁을 한 것은 자사 휘발유가 높은 옥탄가에 수렴한 것을 의미한다”며 “‘우리 휘발유를 넣으면 차량 파워가 더 올라간다’는 등의 말은 낭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좋은 기름’ 광고는 과거에 비해 줄어든 모양새다. S-OIL이 ‘좋은 기름’을 영어로 바꾼 Good Oil을 발음대로 ‘구도일’로 만들어 브랜드화했지만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광고는 ‘구도일’ 그 자체다. ‘좋은 기름’보다는 ‘자사명(自社名)’을 더 전면에 내세우는 셈이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정유4사 휘발유는 이제 상향평준화를 이뤘다”며 “이제는 ‘우리 회사 기름이 다른 회사 기름보다 더 좋다’는 방식의 광고보다 회사 브랜드 가치를 내세우는 마케팅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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