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등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나 밴드라 할지라도 일단 성공하면 서울에서 활동할 뿐만 아니라 아예 서울로 이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클래식은 대중음악에 비해 지방분권적인 요소가 강하다. 왜냐하면 베를린필하모니, 빈필하모니, 뉴욕필하모니 등을 유명 교향악단의 이름을 보면 ‘국립’이라는 말 대신에 특정한 도시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립(National)이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악단은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 러시아 국립교향악단처럼 대부분 사회주의 국가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찰교향악단(Korea National Police Orchestra)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립을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교향악단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기 보다는 도시 혹은 지역의 기본적인 문화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를린, 빈, 뉴욕처럼 수준 높은 교향악단을 보유한 도시는 대체로 문화수준도 높다.

한국에는 베를린필이나 뉴욕필과 같은 초일류 교향악단은 없지만 그들은 세계 순회공연을 통해 가끔씩 내한해 국내 애호가들도 한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오페라는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오페라단이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합창단, 무대세트, 오케스트라, 유명 가수들 등 움직일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욕필하모니는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은 한국을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국내 재벌이 수십억원을 후원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일부 오페라 애호가들은 한국공연을 기대하지 않고 유럽으로 간다. 특히 바그너는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듣고 보는 것이 제 맛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페라하우스를 지방분권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지휘자나 유명 가수들은 서울에서 거주하다 공연 때만 올 수 있지만 합창단원 을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은 지역 인재를 채용할 수밖에 없다.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또 크로스오버밴드 ‘토다’ 의 리더 이기녕 교수는 “축구장 없이 무슨 축구를 하느냐면서 오페라하우스 없이 무슨 오페라를 하느냐”고 반문한다.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바우 교향악단이 세계적인 교향악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880년 암스테르담에 콘서트헤바우라는 공연장이 설립됐기 때문이다.

부산 오페라하우스는 롯데의 기부금 1000억원을 제외하고는 국비를 한 푼도 확보하지 못했다. 많은 시민들이 국비를 확보했다면 지금처럼 시장이 바뀌었다고 착공에 들어간 오페라하우스 공사가 중단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오페라하우스는 지방분권적인 요소가 강하다. 국비를 받았다고 짓고, 못 받았다고 안 짓고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원자력 등 지역 현안에서 부산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는 오거돈 부산시장이 오페라하우스를 머뭇거리는 것은 지방분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지방분권은 단순한 권한이나 돈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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