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간에 많은 제도 변화, 사업주도 노동자도 ‘혼란’
‘근로시간 단축, 4대보험・휴일수당’ 등 갑작스런 변화
업계 부담 가중, 연봉 줄어드는 노동자도 볼멘소리
건설업계 해외경쟁력 약화, 전기공사업계에도 미칠까 우려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업계의 부담이 적지 않다. 한 가지 제도개선에도 대응하기 힘든데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근로 분야의 제도들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로단축제도와 더불어 다양한 제도들이 변화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보다 나은 노동시장을 만들고, 노동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 ‘보다 사람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각 산업계의 특징을 외면하고, 산업계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제도 개선 탓에 현실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것들을 바꿔가다 보니 업계가 그 부담을 모두 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나치게 빠른 제도개선이 업계 압박

업계는 지나치게 빠른 제도개선이 업계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당 52시간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뿐 아니라 4대 보험 지급 기준, 휴일수당 지급 기준 등 다양한 제도들이 한 번에 강화되다보니 2배, 3배의 어려움으로 되돌아온다는 게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우선 정부는 지난 8월부터 기존 월 20일 이상 근로자에게 해당됐던 건설 분야 일용직근로자의 4대 보험 가입 기준을 월 8일 수준으로 확대했다. 문제는 공제 부분을 전부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용직근로자들의 경우도 일당에서 4대 보험을 공제하는 걸 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들을 고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가 4대 보험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공무원에게 적용됐던 공휴일 유급 휴무제도 민간 분야까지 확대된다.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모든 유급휴일을 최저임금 산정 기준시간에 포함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개정안을 종업원 300명 이상 기업은 2020년 1월 1일부터, 근로자 30~300명 미만의 기업은 2021년 1월 1일, 근로자 5~30명 미만 기업은 2022년 1월 1일로 단계적 적용키로 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관공서에서 인정하던 설‧추석 연휴, 3‧1절, 광복절 등 휴일과 대체공휴일, 임시공휴일 등이 유급휴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연간 약 15일 수준의 유급휴일을 추가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업계는 이로 인해 법정 공휴일에 근무할 경우 1.5배에서 2배, 일하지 않아도 급여를 인정해야 하는 등 부담이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올해 한 번에 16.4% 올린 최저임금도 영향을 미친다. 당장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는 없지만 최저임금이 올라간 만큼 기존 근로자들의 임금도 덩달아 상승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로단축제 도입으로 기존 현장 근로자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고 업계 한 관계자는 전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줄면서 기존보다 임금이 사실상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 탓에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임금 수준을 기존과 같은 수준으로 맞춰 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근로단축제와 함께 당장 연봉이 줄게 된 현장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고정 급여를 지급받는 대기업 직원들을 위한 제도라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개정된 법안들을 하나하나 뜯어봤을 때는 충분히 공감이 갈 만한 내용이고, 보다 건전한 노동시장을 만들기 위해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 맞다는 데는 업계 관계자 대부분이 동의했다.

그러나 옳은 방법이라 할지라도 기업들이 대비하고 노사 간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재는 너무 노동 관련 제도가 급변하면서 노동자도 사업주도 혼란스러운 시기라는 얘기다.

전기공사업계 한 관계자는 “근로자들에게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한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것은 맞는 얘기다. 기업들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현재로서는 단순히 까라면 까는 식의 대응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로 인한 모든 부담을 기업이 짊어지고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해외건설 시장서 경쟁력 약화 우려도

업계 일각에서는 근로제도 단축제 등 근로기준법 개정과 함께 건설산업계가 해외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가 지속적으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해외수주 실적은 여전히 기대치를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현시점까지 건설사들의 해외사업 수주 실적은 총 254억달러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226억달러와 비교했을 때 28억달러로 12%가량 증가했지만 올해도 300억달러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2010년 716억달러로 전년도 491억달러 대비 대폭 성장한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사업 수주는 지속적으로 호성적을 이어왔다.

건설업계는 2011년 591억달러, 2012년 649억달러, 2013년 652억달러, 2014년 660억달러를 기록하며 해외시장에서의 먹거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해왔다.

그러나 2015년 461달러로 전년 대비 30.15% 정도 수주액이 급감하면서부터 국내 건설산업계의 해외시장에서의 고전이 시작됐다. 지난 2016년에는 282억달러, 2017년에는 290억달러 수준으로 예년에 비해 부진한 모습이다. 세계 각국에서 여러 랜드마크를 지어내며 이름값을 높여 온 국내 건설산업계가 해외시장에서 하락세를 보이며 삽시간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

사실상 국내 건설시장이 포화됐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시장 진출이 사실상 시장을 키우는 원동력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해외시장에서의 부진한 모습은 오히려 건설업계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인건비와 공사기간 증가가 국내업체의 수주경쟁력을 더욱 크게 저하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현지국가의 제도, 공사여건 및 외국 업체와의 효율적 협업을 위해 근로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필요성이 있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은 해외 파견 근로자에게도 일률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하고 있어 현실을 도외시한 근로시간 단축이 아니냐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을 추격해오는 해외시장 후발주자들이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삼아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만큼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인건비 증가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업계 한 관계자는 지적했다.

주로 국내 대기업과 함께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는 전기공사업계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이들의 어려움 역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기공사업계의 경우 해외사업을 단독으로 수주할 여력이 없는 규모의 기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국내 건설 대기업이 해외사업을 수주할 경우 함께 진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시장 경쟁력 약화가 전기공사업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시장 수주가 점점 줄고 있다. 포화돼 가는 국내 건설시장에서 해외시장은 하나의 돌파구인 만큼 심각한 위기”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오히려 해외시장 경쟁력을 낮추는 것은 문제이며, 해외건설현장을 대상으로 한 조항을 따로 만드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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