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라온위즈 대표/(사)글로벌코리아 이사장/칼럼니스트/스피치디자이너
김수민 라온위즈 대표/(사)글로벌코리아 이사장/칼럼니스트/스피치디자이너

요즈음 개그콘서트에서 직장인들의 뜨거운 공감대를 얻어내는 코너 「감동시대」를 볼 때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일반 직장문화에서 일어나는 상식을 엎고 반전의 드라마를 쓰는 상사의 배려는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예를 들어 마음이 통하는 직원들끼리 카카오 단톡방에서 스트레스 받는 이야기 등 이런 저런 내용을 주고 받는데 부장이 자기도 끼어달라고 하자 모두 불만스러운 표정이 된다. 그 중 한 명이 마지못해 초대했는데 부장은 그 중 한 부하직원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기프트콘(생일케익이나 커피쿠폰 모바일 선물)을 올리고는 바로 빠져나간다. 그러자 부하직원들은 그의 배려에 감동해 “너무나 따뜻한 사라〰암!!” 이라던가.. 감탄사를 토해내고 부장은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관객과 시청자들이 배꼽을 잡으면서도 감동하는 것은 속 시원한 그 반전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 「여우각시별」에서도 공항에서 근무하는 행정요원들이 고객으로부터 겪는 감정노동의 극치 상황에서 자신들의 인권을 지켜나가는 당당함의 반전이 자주 다루어지고 있다. 대부분 서비스직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고객은 왕’이라는 통념 속에서 도를 넘어서는 고객의 횡포를 감당해내며 살아가고 있는데 여기에 상사의 무례한 행동과 폭언까지 더해지면 산다는 것에 회의마저 느껴진다.

간호대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CS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직종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라는 전문성과 환자 및 환자가족, 의사까지 섬겨야 하는 서비스직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외국은 주사를 의사가 놓는다는데 우리나라는 간호사의 일이다. 환자의 상태변화 체크부터 가래를 뽑아내는 일까지, 화장실 갈 새도 없을 정도로 의료인으로서 업무량이 과도하다. 개인병원은 접수대에 앉은 간호사의 친절한 인상이 병원의 이미지를 좌우하기 때문에 개인감정을 감춰야 하고 선배 간호사가 임신하는 시기까지 지정할 정도로 군기가 센 서열문화라고 하니 간호사직 이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강의의 이슈를 ‘소명’으로 잡았다. 나이팅게일 선서처럼 구태의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먼저 그들이 겪을 감정노동에 공감을 해주고 강의를 풀어나갔다.

K항공사, A항공사 로얄패밀리로부터 시작해 수년간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주제는 갑질과 감정노동이다. 강자의 자리에서는 약자의 인격과 감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 개념이 등장한 건 약 40년 전이다. 미국 사회학자 알리에 러셀 혹쉴드가 1979년 논문에 이어 83년 저서 ‘통제된 마음(The Managed Heart)’에서 감정노동을 기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에 더해 새로운 유형의 노동으로 바라보았다. 외부고객으로 인한 감정노동은 조직적인 차원에서 대처할 수 도 있지만 직장상사의 갑질은 승진 등 인사상 불이익과 연관돼 있어 스트레스의 강도가 더 심하다. 신뢰가 가지 않는 상사가 되지 않는 말을 할 때에도 웃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그러나 감정노동은 이제 고객을 상대하는 분야의 종사자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직장인이 겪는 일상이니 스스로를 보호하고 대처해나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전세계 항공사 중 사고율과 이직률이 적은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운영비결은 펀(fun) 경영에 있다. 러허 전 회장은 사람 중심 경영관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고객들을 웃게 하려면 직원들부터 웃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종종 새벽 3시에 도넛을 들고 기내 청소원들을 깜짝 방문하기도 하고, 근엄한 정장 대신 작업복을 입고 비행장을 청소하기도 했다.

내가 상대적으로 강자의 자리에 있다면 아주 작고 사소한 배려도 약자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오존을 뿜어내는 복사기(팩스) 업무를 임신한 여직원에게 시키지 않기, 직원 자녀의 공개수업 등에 참석하도록 조퇴나 외출을 허락해 주기, 공로는 부하 직원에게 돌리고 과실은 자기가 책임지기, 퇴근 시간에 상사 눈치 안 보고 퇴근시키기, 팀원들이 인재로 성장하도록 자기개발에 비용을 산정해 주기, 직원 자녀의 수능일 기억하기, 주말에 등산 등 자기 취미활동에 직장 부하를 불러내지 않기, 명령보다는 공감을 이끌어내기, 먼저 커피 한잔 뽑아다 주기, 출근할 때 먼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기, 새로 산 옷이나 헤어스타일을 잘 어울린다며 칭찬해 주기, 동료들의 경조사를 잘 챙겨주기, 특히 생일날 축하 이모티콘만 날리지 말고 기프트콘을 모바일로 보내주기 등은 우리가 어렵지 않게 만들어갈 수 있는 감동시대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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