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비상대응 행동매뉴얼 위반
원안위, 상세사건 경위 요구 예정

한울원전 전경.
한울원전 전경.

지난 6일 경북 울진군 한울원전에서 송신변수 설정 오류로 백색비상이 잘못 발령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울진군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도자료 배포’를 허위보고한 것으로 드러나 백색비상 발령 사실을 쉬쉬하려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15일 본지 취재 결과 울진군은 오후 1시 37분 한울 3·4호기에 발령된 백색비상을 1시 53분에 접수, 4시 30분에 백색비상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고 원안위에 보고했지만 보도자료를 작성만 한 채 배포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백색비상은 방사선 영향이 원자로건물 내부에 국한될 것으로 예상될 경우 발령된다.

울진군이 백색비상 발령을 접수한 지 2시간 30분가량이 지나서야 보도자료를 준비한 것도 문제이지만, 이를 배포하지 않는 것은 방사선비상대응 행동매뉴얼을 어긴 것으로 관련 사안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안위가 관련 법령에 근거해 방사선비상 시 대응 체계와 주요 대책 등에 관해 제작한 ‘방사선비상 나를 지키는 행동’에 따르면 백색비상 시 지자체는 언론 등을 통해 대국민공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원전 안전분야 위기관리 표준매뉴얼(방사능누출사고 부분)’에도 비상발령 상황 전파와 관련해 광역·기초지자체의 장은 사업자로부터 보고받은 발령상황을 읍·면·동 등 하위·소속기구 등에 전파하도록 돼있다. 방사선비상 상황에 관한 전파는 지자체의 책임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울진군 관계자는 “비상대응정보교환시스템(ERIX)에 보도자료를 게재했다”며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었고, 보도자료를 배포한다고 해서 기자들이 기사를 쓸 수 없는 상황으로 봤다. 월요일에는 이미 백색비상이 해제됐기 때문에 백색비상 해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고 해명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비상대응정보교환시스템(ERIX)에 ‘보도자료 배포’ 문구와 함께 보도자료 문서까지 첨부됐고, 당일 강정민 원안위 위원장 주재 현장점검회의에서도 울진군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고 보고했다”며 “실제 보도자료가 배포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울진군에 상세사건경위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울진군이 보도자료 배포를 허위보고한 사이 원안위는 보도자료 ‘한울원전 백색 방사선 비상발령에 따른 긴급 상황점검회의 개최’를 오후 3시 40분께 배포했으며, 한울원전은 보도자료 ‘한울원전, 태풍 콩레이 대비 백색비상 발령’을 오후 4시 40분께 송부했다. 백색비상이 발령된 지 약 두 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에너지정의행동도 지난 7일 성명서를 통해 백색비상 발령과 관련 ‘뒤늦은 상황전파’에 대해 비판했다. 에너지정의행동은 “오후 1시 40분을 전후로 백색비상이 발령됐지만, 이것이 언론에 공개된 것은 오후 4시 무렵이며, 재난 상황 등을 알리는 한수원의 ‘SMS 알림이’를 통해 백색비상 내용이 알려진 것은 이보다도 늦은 오후 5시 23분경”이라며 “언론보다 한수원의 백색비상 상황 전파가 더 늦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풍속값 전송 오류로 백색비상이 잘못 발령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번 백색비상 오보 사태로 허술한 방사선비상대응 시스템이 드러났다.

현 방사선비상대응 행동매뉴얼은 백색비상 시 마을별 담당공무원과 이장 등 일부 인사들에게만 정보를 전달하고, 재난 문자 발송 등이 의무화돼 있지 않다. 방사선 영향이 원전 부지 내부에 국한될 것으로 예상될 경우 발령되는 청색비상과 방사선 영향이 원전 부지 밖까지 미칠 것으로 예상될 경우 발령되는 적색비상 시에는 정부가 긴급재난문자를 전송하도록 돼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원안위는 신속한 상황전파가 아니라 뒤늦게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개최했다는 보도자료를 냈으며, 울진군이 보도자료를 배포하지 않는 것은 문제”이라며 “허술한 현행 규정과 그 규정조차 제대로 준수되지 않은 것이 이번에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예행연습을 해본 셈인데, 관련 매뉴얼을 적극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우리나라는 그간 청색과 적색비상은 발령된 적이 없으며, 백색비상은 2002년 울진 3호기, 2010년 신고리 1호기, 2011년 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원자로 하나로(HANARO) 등 3차례 발령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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