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해체 전공학과 신설이 논란이다. 포스텍 카이스트 등 일부 대학이 원전해체 전공과정을 신설한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원자력계는 물론 탈원전에 반대하는 많은 언론들은 ‘정부 입맛에 맞춘 반짝 전공이 우려된다’며 발끈하고 있다. 대학 자체 예산으로만 추진한다면 논란거리가 되지 않겠지만, 이들 대학에 정부 예산(5년간 13억5000만원) 즉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부는 바로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부(과기정통부)는 올 7월, 원자력 안전분야 융합적 인재양성을 위해 포스텍·카이스트의 석사 학위과정인 융합기술 특성화 프로그램을 선정·지원하고 있다”며 “포스텍은 원자력안전 분야에 인공지능을 적용한 융합형 인재 양성, 카이스트는 원자력안전 및 핵 비확산 분야에 인문사회를 융합한 교육 프로그램(4년간 10억5000만원)으로 원전 해체와 관련된 석·박사 과정의 신설은 아니다”라고 했다. 또 전 세계적으로 해체시장 성장에 따라 정부가 2015년 수립한 원전해체와 원전해체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계획대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했다.

맞다. 정부는 당시 관련 계획을 수립했고, 계획에 딱 들어맞게는 아니었지만 연구사업 등 일부 사업을 추진해왔다. 일부 대학의 전공과정 신설 역시 이 계획과 무관치 않다.

전 세계 31개국에서 가동하고 있는 원전은 430여기이고, 이 중 거의 80%의 설계수명이 25년 정도다. 현재 전 세계에서 영구 정지된 원전은 150여기고, 해체가 완료된 것은 20여기에 불과하다. 100기는 해체작업에 들어가 있고, 30여기는 해체를 앞두고 있다. 현재 가동되고 있는 원전 437기도 2050년이면 대부분 수명이 다하기 때문이다.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다. 작년 폐쇄한 고리 1호기를 비롯해 가동한지 25년이 넘은 원전이 9기다. 원자력계는 원전해체시장이 2050년까지 약 280조원으로 보고 있다. 엄청난 시장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원전해체 경험은 고사하고 기술을 가진 국가는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정도다. 해체 경험도 미국 15기, 독일 3기, 일본 1기뿐이다. 한국은 당연히 경험도 없고 기술도 부족하다. 원자력연구원이 연구용 원자로(TRIGA MARK-2,3)를 해체하면서 쌓은 경험이 전부다. 원전해체에 필요한 핵심기술 38개 중 확보한 기술은 17개 정도다. 나머지 21개 기술을 2021년까지 개발해 2030년까지 상용화시킨다는 게 정부 계획인데, 이를 컨트롤할 원전해체종합연구센터(가칭)는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 답보상태다. 세계시장은 고사하고, 국내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체기술 국산화는 시급하다. 거듭 말하지만, 이건 탈원전 정책과도 무관하다. 탈원전을 추진하지 않더라도 원전해체는 가야만 하는 길이다.

포스텍과 카이스트 등 일부 대학에서 전공과정을 신설하려고 나선 것을 정부 입맛에 맞춘 반짝 정책이라고 폄하하고, 딴지를 거는 것은 억지다. 과거에는 원자력연구원과 한수원 중앙연구원이 중심이 됐지만, 연구의 성격이 강했다. 그나마도 극소수의 인력이었다. 원전해체는 건설보다 오히려 길고 지난한 작업이다. 방사능만 제거(제염)하면 사실 일반 건축물을 해체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 작업이 어렵고 힘들다. 반대급부로, 기술의 저변이 확대될수록 시너지가 커지는 것도 이 일이다.

과거 반핵단체가 원전 반대를 부르짖을 때 원자력계는 그들의 주장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해 귀를 닫았다. 역지사지다. 원전해체와 탈원전 정책은 별개로 봐야 한다. 성격이 다른 두 사안을 결부시켜 딴지을 거는 것은 반핵단체의 반대를 위한 반대와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원전해체는 원전국의 숙명이다. 대학은 물론 연구계 산업계 그리고 정부까지 하나로 뭉쳐야 시행착오도 줄어들고, 사업으로의 가치도 커진다. 덤으로 세계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거기까지는 못 가더라도 말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