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늘어나는 전기사용량 따라가지 못해
전기안전공사, 설비용량 증설 권고수준에 그쳐
건물별 용량 천차만별 제도적 기반 마련 쉽지않아

노후 아파트의 잦은 정전사고의 원인으로 부족한 전력설비 용량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쉽지 않아 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지난 7월말부터 8월 사이 한국을 뒤덮은 기록적인 폭염 탓에 지난 여름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전기요금에 몰렸다. 폭염을 이겨내기 위해 예년과 비교할 때 냉방기구를 더 많이 가동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간 전기요금이 증가한 가구는 총 80.2%에 달한다. 2011만 가구를 대상으로 전기요금을 분석한 결과 1612만 가구 정도가 전기요금을 지난해보다 더 냈다는 것.

전기사용량과 함께 아파트 정전사고 발생도 늘었다.

실제로 한전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8월 23일까지 전국의 아파트에서 발생한 정전사고는 153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발생한 73건보다 110% 많아졌다.

특히 노후 아파트의 정전사고 발생률이 눈에 띈다. 25년 이상 경과한 노후 아파트의 정전발생률이 15년 미만인 아파트 대비 7.4배 정도 높다. 변압기로 인한 정전이 153건 중 117건으로 76.5%에 달했다.

전기안전공사는 이처럼 높아진 정전발생률과 관련해 설비 노후화 문제와 더불어 설비용량 부족 문제가 컸던 것으로 분석했다. 늘어난 전기사용량을 낡은 전력설비용량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40조 1항에 따르면 주택에 설치하는 전기시설의 용량은 각 세대별로 3kW 이상이어야 한다. 이 기준에 맞춰 과거 지어진 아파트들의 전기설비 설계용량은 대부분 세대별로 3kW 정도에 그치고 있다. 과거에는 냉난방 부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설비가 충분했다는 게 전기안전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에어컨과 전기 난방기구를 사용하는 가구가 늘면서 폭염과 한파시 3kW 정도의 용량으로는 최근의 전기사용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최근 아파트는 대부분 가구당 4~5kW 정도의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끔 설계됐기 때문에 정전사고가 적은 편이다.

전기안전공사는 계약용량 75kW 이상인 자가용전기설비에 사용전검사와 정기검사를 수행하고 있다. 아파트의 경우 계약용량이 대부분 75kW 이상이기 때문에 정해진 시기마다 정기검사를 받는 대상이다.

이때 전기안전공사에서는 전기설비의 적합성만을 판단할 뿐 변압기 용량 등 설계용량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합격·불합격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변압기 용량 부족 탓에 전기사용량이 급증하는 시기에 무리한 운전으로 정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크지만 사실상 조치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설비교체를 통한 용량 증설을 권고할 순 있지만 이를 강제할 수 없다. 아파트 전기설비는 사유물이기 때문에 불합격 판정을 받지 않은 이상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파트 측에서도 수천만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전기설비를 교체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게 안전공사 측의 설명이다.

전기안전공사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기술기준상에 적합 전기설비 용량에 대한 조항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용량의 적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 기준을 수립한다면 검사시에도 설비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다만 전기설비기술기준을 관리하는 대한전기협회 측은 이 같은 기준을 도입하는 게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용량은 건축물별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기술기준에서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게 전기협회의 설명이다. 제도적으로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마련이 쉽지 않다는 것.

최근 전기설비의 적정 용량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만큼 전력산업계가 의견을 모아 최적의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는 게 전기안전공사 측의 설명이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등 앞으로 설계해야 할 건물에 대한 규제 외에는 전기설비 용량 증설이 사실상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한전 등에 아파트 노후 변압기와 용량 현황 등을 공유함으로써 교체지원사업이 보다 원활히 이뤄지도록 지원하고 있지만, 이 이상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고병찬 전기안전공사 검사점검처 검사부장은 “국내에서는 전기안전관리자들의 권한과 입지가 보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들여서 설비 개선을 건의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천만원을 들여 설비를 교체하자는 건의를 안전관리자들이 할 경우 오히려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아파트 정전 사고의 원인으로 부족한 설비용량이 지목되는 만큼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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