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겸(?~ 1126)은 고려 예종과 인종의 장인인 동시에 인종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7명의 왕이 재위하는 동안 약 80년 동안 권세를 누렸던 인주(지금의 인천) 이 씨 가문의 일원이었다.

고려 17대 임금 인종(1109~1146)은 외할아버지 이자겸의 기세에 눌려 왕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 1126년 왕정복고를 노리던 인종은 마침내 이자겸 제거를 결심, 거사를 실행에 옮기지만 실패한다. 이자겸도 이후 척준경의 배신으로 유배지에서 최후를 맞았다.

인종의 경우처럼 합법적 수단을 통해 권력을 소유하고 있던 국가 지도자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을 친위 쿠데타(親衛 coup d’Etat, self-coup)라고 한다.

오늘날엔 입법부를 해체하거나 헌법을 무효로 하고, 정상적 상황에선 허용되지 않는 극도로 강력한 권력을 쟁취하는 체제 전복 행위를 의미한다. 친위쿠데타에 성공한 지도자는 필연적으로 독재자로 변신하기 마련이다.

○…프랑스어 ‘쿠데타’는 1799년 나폴레옹이 군사적 수단으로 정권을 빼앗은 것에서 유래했다. 우리 현대사에서 쿠데타라고 하면 대개 두 개의 사건이 회자된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와 1979년 12.12 쿠데타다. 이 두 번은 결과적으로 모두 성공했다. 즉 군부가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했다.

비록 친위 쿠데타로 자주 불리지는 않지만, 친위쿠데타도 분명 있었다.

1971년 3선 개헌으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가 이듬해인 1972년 10월, 제3공화국 헌법을 무력화하고 유신을 선포한 일이다. ‘10월 유신’은 현직대통령이 일으킨 쿠데타, 즉 ‘친위 쿠데타’였다.

유신헌법(제7차 개정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신설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간접선거로 뽑도록 했다. 임기 6년에 연임제한을 철폐했고, 국회 해산권과 헌법 효력 정지권한(긴급조치권), 법관 임명권을 부여했다. 국회의원 1/3도 대통령이 지명하도록 했다.

한마디로 헌법 위에서 무제한 권력을 행사하는, 종신 총통이 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반쪽 민주주의 국가에서 완전한 독재국가로 전락했고 국민에겐 오직 복종할 자유만 주어졌다.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을 두고 ‘친위 쿠데타’를 도모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범죄여부를 떠나 국민배신행위라는 비난도 많다. 사실 확인과 법리적 판단에 앞선 섣부른 예단은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 지금으로선 군검 합동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박정희는 5·16쿠데타 이후 “다시는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전역해 대통령에 당선됐고 10년 후 영구집권을 도모했다.

유신 이후 반세기에 가까운 46년이 지났다.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려 했던, 그래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했던, 무모한 이들이 만약 이 시대에 있었다면 어떤 이유로도 용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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