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두려운 생각이 든다.

불길한 꿈을 꾸고 난 후의 찝찝함이랄까.

난생 처음 맞닥뜨린 폭염 앞에서 난 솔직히 두려움을 느꼈다.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오고 며칠은 헛웃음이 났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면서도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게 당연하지’하면서 눈 딱 감고 반짝 더위를 이겨내리라 생각했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 ‘서프리카(서울+아프리카)’라는 신조어가 등장해도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기가막히네 하고 넘겨버렸다.

그런데 40도 가까운 기온이 여러 날 지속되면서 스멀스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과거의 수많은 여름을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기온을 기록했습니다.”라는 기상캐스터의 멘트를 들으며 지나왔을 텐데, 올 여름은 한낮의 내리쬐는 햇빛과 어두워져도 식을 줄 모르는 열기가 참으로 두렵기만 했다. 지난해 두세 번쯤 가동했을 에어컨을 밤새 틀면서도 ‘전기요금은 어쩌지’ 하는 걱정조차 들지 않았다. 에어컨 없이는 긴긴밤을 견뎌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다 지구가 폭발하는 게 아닐까. 딸에게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말라고 해야 할 것 같아. 그 아이들이 이 땅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

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 것도 그 때문이다.

오늘도 지구는 타들어갈 듯 열기를 뿜어댄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폭염이 수그러들 수는 있지만 내년 여름의 한낮 기온은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정부가 지난 1일부터 커피전문점의 일회용 컵 단속을 시작했다.

테이크아웃 목적이 아니라면 매장 내에서 일회용컵 제공은 금지된다.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는 1회 이용인원, 면적, 위반 횟수 등을 고려해 5만~200만원 사이에서 결정된다.

일부에서는 회사원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에는 설거지 시간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어 직원을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며 이번 일회용컵 규제를 전형적인 탁상행정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저임금이 인상된 마당에 직원 고용까지 늘려야하는 고충을 토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보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구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 모두가 지금처럼 오늘만 살고 말 것처럼 살아간다면 내 딸의 딸은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5월 20일부터 7월 31일까지 2355명의 온열환자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29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가축도 314만8000마리가 폐사했다. 모두 더워서 죽었단다.

이런데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일회용품을 쓸 것인가는 이제 고민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일회용규제정책이 아니라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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