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배터리 품질, 외부 충격 여부, 항온항습설비 미흡 등 지적

ESS 화재 조사에 나선 다수의 전문가들은 폭발 원인을 다양하게 추정할 수는 있지만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 현장에 있는 배터리 랙(Rack)이 완전히 전소된 데다 추정되는 원인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 앞서 ESS 보급정책을 펼쳤던 해외에서도 화재사고에 대한 명확한 원인 규명이 쉽지 않아 배터리 제조와 설치, ESS 시공 등과 관련된 안전기준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책을 강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자체의 품질 문제, 배터리 이동 시의 안전성 미확보, 미흡한 항온항습설비, 비정상적인 랙 구성 등 사고 원인을 다양하게 지목했으며 특히 국제적 기준에 미흡한 안전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외부 충격으로 인한 배터리 손상 여부

화재 조사에 참여했던 A씨는 배터리 품질이 사고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내놨다.

최근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음극과 양극, 분리막, 전해질로 구성돼 있으며 음극과 양극이 분리막을 사이에 두고 분리돼 있는 형태다.

만약 외부 충격으로 분리막이 훼손될 경우 양극와 음극이 만나 내부 단락을 초래하고 이로 인해 열이 발생하고 발화로 이어지게 된다. 배터리제조사는 이 같은 배터리의 특성을 감안해 다양한 안전성 테스트를 실시한 후 제품을 출고하고 있다.

A씨는 “제조사에서 안전성 테스트를 하고는 있지만 ESS 폭발사고가 이어진다면 절연 파괴나 전자기기에 장애를 줄 수 있는 서지와 관련된 테스트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배터리 충전량, 최대 부하 등 다양한 환경에서 배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ESS 설치 현장으로 배터리를 이동할 때와 설치할 때 외부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리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항온항습설비 제대로 갖춰야

A씨는 또 ESS가 설치돼 있는 컨테이너 안의 환경을 지적했다. A씨는 “배터리의 경우 습기 등 외부 환경조건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항온 및 항습설비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반면 일부에서 소화설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A씨는 밝혔다. 일반적으로 소화설비는 약제를 사용해 화재의 확산을 막거나 억제시키는 역할을 한다.

ESS 폭발사고가 난 대다수 현장의 경우 소화설비가 작동하더라도 배터리 랙이 전소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배터리 랙 비정상으로 과밀

화재 조사에 나섰던 또 다른 전문가 B씨는 우리나라는 배터리 랙이 비정상적으로 과밀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한 ESS는 대부분 독립된 컨테이너 내에 위치하는데 수백개에서 수천개의 배터리 랙이 연결돼 있다 보니 대형사고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해외의 경우 한 개의 랙마다 차폐벽을 세우는 등 폭발로 인한 화재의 확산을 방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

B씨는 “원가 절감 등을 이유로 20피트 컨테이너 4대 정도는 필요한 ESS를 40피트 컨테이너 한 곳에 과밀하게 설치한 경우도 봤다”며 “이로 인해 컨테이너 안의 온도가 상승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전기준 국제적 수준으로 강화해야

B씨는 해외의 경우 ESS 안전성과 관련된 기준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국제기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IEEE나 UL의 경우 ESS 설치와 관련된 기준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데 이는 외부 충격에 약한 리튬이온 배터리의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B씨는 설명했다.

또 B씨는 “에너지절감 차원에서 에너지다소비 건물에 ESS를 설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뉴욕시의 경우 250kW 이상 ESS는 건물 밖에 설치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며 “이에 대해서도 정부차원의 선제적인 움직임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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