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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광장) 신이 된 해적, 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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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학대하는 아비를 피해 크레타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떡갈나무(참나무) 배에 올라 독수리의 눈을 가지고 에게해 곳곳을 벼락처럼 덮쳤다. 젊을 때 지역의 폭군 크로노스에 반대하는 포세이돈, 하데스와 의형제를 맺고 헤라와 결혼했다. 처음에는 나이 많은 포세이돈이 큰 형이었으나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세력을 접수한 뒤 대두목의 자리에 올랐다. 후에 북방계 티탄족이 침입했을 때 이들을 물리치고, 페니키아에서 유로파라는 첨단 구축함을 훔쳐 그리스와 에게해를 지배하게 되면서 올림프스족의 주신(主神)이 되었다.
제우스의 일생은 해적답게 납치와 난봉으로 점철되었다. 대부분 강간이었으며, 간혹 총각을 가장하기도 했다. 거쳐가거나 약탈한 해안과 섬마다 거의 예외 없이 배에 식량과 물을 채울 며칠 동안 사랑을 껄덕댔다.
해적은 머무르되 정주하지 않는다. 언제고 떠나는 것이 해적이다. 제우스는 사랑하였으나 버리고 도망갔다. 수많은 사생아를 낳았고 이들이 자라 애비와 같은 해적이 되었다. 제우스와 함께 그리스 세력을 형성했다.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확장 전략이었다.
버려진 아이들 대부분이 조강지처인 헤라가 낳은 적자들보다 뛰어났다. 이는 당연할 것이다. 뛰어난 여자만 노렸으니까. 이들 대부분이 에게해의 곳곳에서 나름 두목이 되었다. 아폴론, 아르테미스,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페르세포네 등이 제우스의 사생아들이다. 나중에는 에게해의 모든 그리스 해적이 제우스의 아들임을 내세웠다. 해적의 우두머리가 되자면 그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세력이 커지고 안정화되면서 족보가 만들어지고, 아름답게 미화되었다. 대부분의 해적은 족보에서 왕이 되었다. 도망가거나 무관했을 지라도 아버지였기에, 제우스는 신으로 추대되었다. 왕(아들)이 죽을 때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할아버지는 신이 되었다.
이렇게 신화가 탄생하였다. 민족은 신화 공동체다.(같은 신화를 믿는 무리가 민족이다.) 신이 된 해적, 제우스의 이야기를 믿는 자들을 그리스인이라 한다. 기원전 1300년에서 1250년 사이, 청동기 끝 무렵에 그리스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 신화를 믿지않는 자의 해석이다.

람세스 2세와 제우스
제우스가 크로노스의 세력에 대항해 싸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놀랍게도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있다. 기원전 13세기 초 이집트는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새롭게 팽창하고 있던 히타이트와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히타이트에게 빼앗긴 북쪽 시리아 지역의 거점 도시 카데쉬(Kadesh)를 수복하는 것은 젊은 파라오 람세스 2세가 가장 집중하는 과제였다. 그것은 레바논 지역의 풍부한 목재자원(레바논 삼나무)을 확보함과 동시에 아라비아에서 페니키아, 지중해 동쪽에 대한 지배력을 회복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청년기 람세스는 선대 파라오 세티 1세의 시리아-아무르 지역 원정에 참전해 히타이트 제국의 힘을 체험했었다. 철기를 발명해 농업과 군사력을 혁신한 히타이트는 강력한 신무기 그중에서도 강철 마차축을 가진 최초의 3인승(운전병과 창병, 방패병) 중전차 부대를 운영하고 있었다. 철의 제국 히타이트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는 것은 강대국 이집트에게도 힘겨운 일이었다.
젊은 파라오는 야심만만하며 치밀했다. 우선 나일 강 삼각주 북쪽에 신도시인 Per-Ramesesu(페르라메수)를 조성하고 수도를 옮겨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하였다. 당시 해상에서는 크로노스가 이끄는 크레타 해적 세력이 지중해 동부부터 나일 하구까지 노략질을 일삼고 있었다. 고작 20-30명이 소형 배를 타고 몰려다니는 도적떼 수준이긴 하나 이들을 방치하면 나일에서 카데쉬까지의 군수지원이 어려워진다. 시나이반도에서 가나안을 거치는 1000km 이상의 육로 수송은 그 자체로도 어려운 일이지만 곳곳에 출몰하는 토착무력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병력이 소요된다. 그러므로 나일에서 페니키아의 항구도시인 티레(Tyre)-시돈(Sidon)-비블로스(Byblos)-트리폴리(Tripoli)를 거치는 해상보급로 확보는 이집트가 카데쉬 전쟁을 시작하기 위한 선결조건이었다.
람세스 2세는 파라오에 오른 2년 만에 크로노스의 크레타 해적을 소탕한다. 해적떼를 단 한 번의 작전으로 소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당시 이집트는 세계 최고의 배를 만들었으며 항해술도 있었다. 수많은 피라미드와 신도시 공사에 필요한 대량의 물자를 나일강을 통해 배로 실어 날랐으며, 길이 23미터, 무게 250톤에 이르는 거대한 돌 오벨리스크도 배로 운송했다.
비록 크레타에서는 포세이돈-제우스-하데스 무리를 억누르고 있었으나 크로노스의 티탄족 무리란 규모가 커진 해적에 불과했다. 람세스 2세의 소탕작전으로 해적은 위축되어 먹고 살기 어려워지고 결국 까마귀 떼처럼 동요했다. 이때 제우스가 형제들과 함께 올림포스 산을 거점으로 크로노스 세력과 전쟁을 시작하니 이것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 신족과 올림포스 신족 간 싸움이자 제우스가 크레타와 그리스 반도의 새로운 주인이 되는 이야기인 티타노마키아다.
작성 : 2018년 06월 25일(월) 08:16
게시 : 2018년 06월 26일(화) 10:08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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