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국갈등학회 하계학술대회

22일 서울 한국전력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18년 한국갈등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수립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22일 서울 한국전력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18년 한국갈등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수립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을 출범시키며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방폐물 관리 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가운데 관련 사업을 서두르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월성원전은 2020년, 고리원전과 한빛원전은 2024년 소내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수립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국민 의견 수렴과 투명한 정보 공개 등의 과정을 착실히 이행해야만 고준위방폐장 사업을 원활히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22일 서울 한국전력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18년 한국갈등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박주완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사업본부장은 “주민참여와 더불어 숙의성 확보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며 “시민학습과 정보 제공을 위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원자력환경공단은 지난해 고준위방폐물 관리시설에 대한 주민의견 사례연구를 통해 해외 주요국에서 부지선정 시 참여수준과 시사점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회적 합의를 통한 주요 참여 프로세스 설계나 소통을 통한 사회적 대화 활성화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서도 시민참여형 조사방식을 도입해 이해관계자가 숙의과정에 참여하도록 설계한 점이 주목받았다.

박 본부장은 “프랑스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등의 사례를 접목해 향후 고준위방폐장 부지선정에서는 주민투표의 활용범위나 방법에 대한 제도적 보완과 함께 시민배심원 제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숙의 민주주의 형식 등도 필요하다”며 “또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전문지식을 학습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시민의 학습과 정보 제공을 위한 체계적인 제도 설계와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박 본부장은 투명한 정보공개와 핵심 이해관계자 참여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20년간 진행된 부지선정과 중저준위방폐장의 안전성 논란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에 대한 중요성을 체득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원자력환경공단이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한 ‘고준위방폐물 관리시설 부지 확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개선 분야’에 관한 조사에서도 절반 이상이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신뢰가 있는 추진절차’를 꼽았으며, ‘이해관계자 참여 및 의견수렴’이 뒤를 이었다.

그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참여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다”며 “고준위방폐물 관리 시설 확보 과정에서 효과적인 정보 공개와 참여 확보를 위해 다각적인 접근으로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또 중저준위방폐장 부지 선정 과정을 되짚었다. 중저준위방폐장 사업은 20년간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표류했다. 방폐물관리사업은 대국민 소통부족과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 정치적 이슈화 등으로 대표적인 갈등 사업으로 꼽힌다.

2005년 3월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됐다. 이 특별법은 정부나 사업자가 먼저 정책을 결정한 후 발표하고 이에 대해 설명·설득하는 기존의 방식(DAD Approach; Decide Announce Defend Approach)에서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담겼다. 우선 지자체장이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아 유치신청서를 신청하도록 해 대의 민주주의의 두 주체인 입법기관과 행정기관이 부지선정 과정에 참여하게 됐다. 또 주민투표를 도입해 직접 민주주의 요소도 적용됐다.

2005년 공모를 통해 유치의사를 보인 경주, 군산, 영덕, 포항 등 4곳에서 같은 해 11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경주시는 89.5%로 찬성여론이 가장 높아 중저준위방폐장을 유치했다.

박 본부장은 “2005년 주민투표를 도입해 민주적 국책사업의 대표 사례로 거듭났다”며 “법제화를 통해 정책추진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참여를 제도화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 본부장은 중저준위방폐장 부지선정 과정에서 ▲과열경쟁과 극심한 대립 초래 ▲숙의성 부족 ▲일방적인 정보 유통 ▲정보 제공 사업의 편향성 등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쟁이 과열되면서 지역감정이 조장되고, 공정서 시비가 제기되는 요인이 됐다. 또 지역발전 논리와 환경논리가 대결하면서 찬성 주민과 반대 주민이 극심하게 대립했다”며 “주민투표를 통해 부지선정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됐다는 지적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쟁적인 구도하에서 지역지원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검증, 속 깊은 정보공개 등이 미흡했다”며 “홍보관 설치, 시설견학, 설명회, 토론회 등을 위해 찬반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지원방법이나 지원대상에 대한 편향성 문제가 지적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패널토론에 참여한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부장은 “고준위방폐물 해결방안을 빨리 마련하기 위해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서두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소내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시점이 다가오고 있어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지만, 중저준위방폐장 부지선정과정과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장기적인 계획을 그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창용 산업부 원자력환경과장도 “원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전력수급에 대한 책임이 있는 정부 입장에서 현실적인 대안은 소내 건식저장시설을 건설하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지역 의견 수렴이 불충분했고, 지난 공론화에서 설득 노력이나 기본 정도 제공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 제공을 위한 노력이 문제해결의 실마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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