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인 가온전선 대표
윤재인 가온전선 대표

한겨울, 스위스 알프스에서 훈련하던 헝가리 부대가 고립되었다. 부대를 인솔하던 중위는 소수의 정찰팀을 꾸려 기지로 돌아갈 최선의 경로를 찾아서 밤이 되기 전에 돌아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그런데 정찰팀이 출발한 직후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중위는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둘째 날에도 정찰팀이 돌아오지 않자 부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셋째 날에 정찰팀이 돌아와 믿을 수 없는 행운을 누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둘째 날 밤에 정찰팀은 완전히 길을 잃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 명이 식량 밑에서 지도를 찾아 냈다. 그들은 다음 날 아침에 지도를 따라 여러 산을 지난 끝에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다. 중위는 그 지도를 받아 들고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건 알프스 산맥의 지도가 아냐. 여기서 1,000킬로미터 떨어진 피레네 산맥 지도라고!”

비즈니스 교수이자 조직심리학자인 칼 와익은 이 일화를 인용하며 ‘길을 잃었을 때는 어떤 지도라도 쓸모가 있다’고 강조했다.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서 지도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일단 출발하면 지도는 부차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헝가리 부대 정찰팀 일화는 기업 경영에서 비전의 역할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정찰대가 방향을 잃어버리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발견된 지도는 대원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그러다 지도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눈보라를 이기고 기지로 돌아오게 만든 동인은 대원들의 목표의식과 긴밀한 팀워크였다.

기업의 비전도 마찬가지다. 비전 수립 과정에 있어서는 해당 기업의 정체성과 중장기 목표에 부합되는 최적의 비전 설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좋은 비전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전 설정보다 수립된 비전을 기업에 내재화하는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비전은 믿음과 소통, 그리고 동기부여가 필요한 영역이다. 잘 만든 비전이 되기 위해서 구성원의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 조직원들이 비전을 중심으로 뭉쳐서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조직문화와 일처리 방식도 비전 체계에 통합돼 지속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당사는 창립 70주년을 맞이하면서 경영을 점검하는 기회를 가졌다. 당사는 꾸준히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으나 최근 몇 년간은 전선업계에 닥친 시장환경 악화로 성장 부진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저성장 시대에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새로운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전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주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였다. 먼저 최고 임원부터 사원까지 인터뷰를 통해 당사가 미래에 어떤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국내시장 중심의 사업 구조를 극복하고 싶어하는 공통된 갈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Beyond Cable’, 즉 선의 한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케이블 메이커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였다. 3월에 개최한 70회 주주총회에서 주주들 앞에서 새로운 비전을 선언하고 앞으로 글로벌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문화 혁신으로 회사 역량을 높일 것을 다짐했다.

이렇게 새로운 비전을 수립해 발표했지만 구성원에게는 비전이 눈에 보이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느낀다면 표면적인 활동으로 그칠 것이다. 회사 구성원들이 피부로 체감하고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는 비전으로 자리잡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 변화를 촉진하고자 한다. 임원부터 새로운 가치체계를 이해하고 솔선수범할 수 있도록 비전공감포럼을 통해 주기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조직문화를 개선할 수 있도록 각 부문마다 변화관리자를 선정해 자발적인 변화활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해외 사업 강화를 위해 현지 전문가 후보군을 선정해 집중 어학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비전이 멀리 느껴지고 체감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활동들을 진행하면서 비전이 단순 구호가 아니라 실행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진정성이 구성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사인이 나타나고 있다.

비전 달성을 위한 변화 활동이 구성원들에게 회사 생활에서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더 나아가서 비전을 생각할 때마다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는 살아있는 것으로 다가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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