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화재참사’로 소방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후진적인 케이블 내화시험 기준에 대한 개정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각종 변수를 고려치 않은 시험 기준으로 내화케이블이 제 역할을 못해 2차 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전선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케이블 내화시험 기준은 온도 조건은 물론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시험 환경으로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가구, 내장재 등의 붕괴로 인한 충격, 스프링클러나 소화 과정에서의 분무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해 케이블 훼손할 수 있는데 국내 기준은 이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온도 기준도 선진국에 비해 낮아 화재 시 소방안전설비에 전력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자칫 2차 사고로 이어지는 등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내화케이블의 성능 기준을 규정한 ‘소방용전선의 성능인증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 제7조(내화시험)에는 ‘KS C IEC 60331-11’에 따라 750℃ 이상의 온도로 90분간 가열, 케이블 성능을 확인하는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옥내소화전설비의 화재안전기준’ 별표1에도 750℃(±5℃) 불꽃으로 3시간동안 가열하고 퓨즈의 단선여부를 확인하는 정도로 내화성능을 규정하고 있다.

반면 선진국의 경우 시험온도는 물론이고, 분무·타격 등의 여러 변수, 건물 종류에 따른 차등규정까지 고루 갖춰 내화케이블의 파손으로 인한 2차 사고를 철저히 예방하고 있다.

먼저 유럽의 경우 건축자재규정(CPR)을 도입, 전선뿐 아니라 각종 건축자재의 안전성 강화에 나서고 있다.

CPR에는 유독가스와 난연성, 불똥시험, 연기 등 4가지 항목에 대한 케이블 규격이 레벨 별로 나뉘어 규정돼 있으며, 높은 건물이나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장소일수록 안전성을 높인 전선을 사용하도록 강제한다.

특히 영국의 경우 국가규격(BS)을 통해 내화 950℃ 180분 노출, 분무 650℃ 30분 노출, 타격 950℃ 15분 노출 등 각종 변수를 적용한 시험을 진행한다. BS의 이 같은 규정은 중동·아시아 등의 여러 국가로 전파돼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국제표준인 IEC 60331-1,2에도 내화와 타격 시험을 동시에 적용하면서 830℃ 불꽃에 120분 동안 노출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며, 미국, 일본 또한 각각 UL, JIS 등을 통해 케이블의 안전 확보에 나서고 있다.

겨우 중국 정도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내화시험 기준을 운용하고 있다. ‘난연·내화성 전선 및 케이블 일반’ 중국표준 ‘GB/T19666’에 따르면 750+50℃의 불꽃에 90+15분간 노출시키도록 규정돼 있다.

국내 소방용 내화케이블 규격이 세계적인 흐름에 뒤처져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다.

이와 관련 제천화재 당시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칫 내화케이블이 소손돼 제2, 제3의 제천참사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전선업계에서는 내화케이블 시험 기준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750℃에 불과한 온도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 타격·분무 등 환경 변수에도 대응할 수 있는 시험기준을 새롭게 추가하자는 것이 골자다.

특히 제천화재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이나 초고층빌딩 등에서는 보다 강력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전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선진국들의 경우 화재안전에 대한 규제가 매우 강하다. 특히 화재가 발생할 경우 케이블을 비롯한 건축자재로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사고가 발생한 후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응 말고 안전성을 높인 제품을 도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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