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초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네덜란드는 중앙아시아에서 들여온 한 종류의 꽃에 매혹돼 있었다. 아름답고 귀한 꽃, ‘튤립’을 갖기 위해 사람들은 차츰 이성을 잃어갔다. 한 송이 가격이 한 달 만에 50배 폭등할 만큼 투기수요가 몰렸다. 귀족의 전유물이던 튤립에 인생을 거는 이들이 늘어갔고 탐욕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했다.

1636년 가장 비싼 튤립모종의 가격은 5000플로린이 넘게 거래됐는데, 당시 소한 마리 가격이 120플로린 정도였으니까 무려 40마리가 넘는 가치다.

상류층의 단순한 과시 대상에서 전 국민의 투기 대상으로 바뀐 튤립은 더 이상 ‘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내 버블은 꺼졌다. 1637년 2월 마침내 공황을 일으키며 4개월 만에 가격은 95% 폭락했고 파산자는 속출했다.

튤립 버블은 생산의 확장에 기인하지 않은, 또는 자산가격이 내재 가치에서 벗어나는 전(前) 자본주의 공황의 대표적인 실례로 회자되곤 한다.

○…튤립 버블이 다시 등장했다. 암호(가상)화폐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는 암호화폐 열풍을 ‘17세기 튤립 버블의 21세기형 글로벌 버전’이라고 못 박았다.

튤립으로 시작해 닷컴, 부동산 버블 등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되풀이됐던 투기 광풍의 하나로 본 것이다.

암호화폐 열풍도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용해 누군가가 장난을 쳐서 돈을 뺏어 먹는 과정이라고 본 그의 시각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신기술인 ‘블록체인’을 규제해선 안된다는 게 대표적이다.

블록체인은 거래정보를 중앙서버가 아닌 거래 참여자 모두 공동 저장·관리하는 방식. 2009년 선보인 비트코인이 블록체인 기술의 효시로 여겨진다.

아무래도 복잡한 신기술이 연계돼 있으니 암호화폐 투자를 투기로 인식하는 경향도 희미하다.

묻지마 투자가 아니라 미래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는 암시를 주기에도 효과적이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도 지금의 거래 행태가 이성적, 합리적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정부의 입장대로 암호화폐는 법정화폐가 아니다. 어느 누구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다. 불법행위·투기적 수요, 규제환경 등에 따라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암호화폐 거래를 통해서만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시장을 규제한다고 금융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암호화폐를 규제한다고 해서 블록체인 기술이 사장되지는 않는다.

기술은 복잡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간단하다. 탐욕의 끝은 언제나처럼 비극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예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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