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

지난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논란을 빚어온 원자력연구원의 ‘파이로프로세싱-소듐고속로’ 개발사업에 대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지난해 12월 구성한 사업재검토위원회를 통해 동사업의 3개년계획(2018~2020년)에 대해 1월중 지속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이미 타당성 측면에서 상당수의 원자력 전문가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아왔고, 이번 재검토과정 또한 지난해 진행된 ‘신고리원전 공론화’ 대비 절차적 정당성, 공개성 측면에서 크게 미흡해 시민사회의 반발을 받고 있다.

명칭부터 생소한 이 사업은 과거 영국, 프랑스 등이 가동하다 사실상 폐기단계에 들어선 습식재처리와 달리 건식처리 즉 전기화학적 공정을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고, 여기서 발생한 폐기물중 일부인 초우라늄원소(TRU)를 별도로 개발한 고속로의 연료로 사용한다는 기술개념이다. 주관기관인 원자력연구원(이하 원연)은 이를 통해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를 감소시키고, 고속로를 통해 전력까지 생산하는 ‘일석이조’의 목표를 실현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언뜻 들어보면 그럴듯한 개념이지만, 국내외의 적지 않은 원자력 전문가들은 이 사업이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정책결정권자를 오도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에서 본질적인 어려움은 단순한 부피가 아니라 요오드-129, 테크네슘-99 등 사용후핵연료 중량의 불과 0.2% 정도의 양이지만 수명이 길고 지하에서도 이동성이 큰 핵분열물질의 장기보관에 있다. 그러나 원연은 이 사업이 이들 장수명 핵분열물질에 대해선 아무런 감소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은폐한 채, 엉뚱하게도 지하에서 이동성이 낮아 장기간 생태계로의 노출위험이 매우 낮은 초우라늄원소를 줄인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민들과 정책결정권자를 오도하고 있다. 게다가 사용후핵연료의 건식처리과정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세슘, 스트론튬 등 비교적 위험한 중준위폐기물은 경주방폐장과 달리 별도의 지상 저장시설에 약 300년간 보관해야 한다. 한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업이다.

또한 동시에 개발되는 소듐냉각 고속로는 냉각재인 소듐이 물이나 공기에 노출됐을 때 폭발, 화재를 일으키는 등 심각한 안전문제를 발생시킨다. 익히 알려진 일본 몬쥬 고속증식로는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지난 1995년 준공된 후 화재사고를 일으키는 등 22년 동안 불과 250일 가동에, 유지비용만 12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정부예산이 낭비됐다. 지난해 폐쇄방침이 결정된 이후에도 해체철거에만 약 30년, 추가비용 역시 천문학적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원자력계 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지난 정부에서 이 사업은 별다른 제약 없이 매년 약 500억원가량의 공적 기금이 투자됐다. 언뜻 이 사업의 논란이 통상적인 찬핵/반핵 대립으로 보일수도 있으나, 이 문제는 지난 2016년 원자력학회의 동료평가에서도 타당성문제가 지적됐던 바 기본적인 연구윤리의 문제이다. 이 때문에 이 사업의 지속여부는 과연 국내 원자력계가 자정능력을 갖고 있는지 보여줄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원자력찬반을 떠나 이미 발생했거나 향후 발생할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하고 공정한 처분은 앞으로도 연구가 필요한 주제이다. 그러나 국내 원자력계의 특정집단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교묘히 이용해 이 허황된 연구개발사업을 지속하도록 방치한다면 향후 원자력계 전체가 받을 타격은 치명적일 것이다. 10여년 전 국내외에 논란을 일으킨 ‘황우석 사태’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보의 조작과 해외 연구기관까지 끌어들여가며 화려한 여론몰이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데 에 단기적으로 성공했는지 모르나, 결국 ‘황우석 사단’은 물론 국내 생명공학계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국내 원자력계가 이런 전철을 밟지 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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