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딩턴(A. Eddington)이 말한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처럼 세월은 참 쏜살같이 지나간다. 지난 한 여름의 무더위보다 더 뜨겁게 달아올랐던 탈원전 논쟁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새해이니 말이다. 물론 에딩턴이 시간이 빨리 간다는 뜻으로 시간의 화살을 얘기한 것은 아니다. 고전물리학에서 말하는 시간 대칭성을 문제 삼기 위해 ‘시간의 비가역성’을 얘기한 것이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지나간 시간은 비가역적이고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지난 해의 생사를 건 탈원전 논쟁이 지난 일이니 잊자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날씨도 차가와진 만큼 이제는 얼음장 같은 냉정함으로 지난 해 탈원전 혹은 에너지전환을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탈원전이든 에너지전환이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의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실현가능성이 있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계획이다. 그 동안 수차례 저탄소나 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에너지관련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해 왔지만 그것이 제대로 성사된 기억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계획 수립과정 자체가 정치논쟁에 쉽게 노출되어 있고 이로 인해 다소 무리한 내용을 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계획 자체가 시장과 산업 그리고 국민들에게 신뢰성 있는 시그널을 보내지 못한다. 이제는 계획수립 과정을 둘러싼 제도적 거버넌스를 한번 되짚어 볼 때이다.

둘째, 설령 정부계획이 잘 수립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전력산업과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세제와 전기요금과 같은 제도 전환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발전용 연료세제가 불공정하고 발전비용에 여러 가지 사회적 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탓에 우리나라 발전설비간 비용격차가 다소 증폭되어 있다. 비용격차가 벌어진 설비들간에 믹스조정이 늘 정치적 사회적 논란을 유발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매번 계획마다 수요관리 목표수치가 ‘정치적 이유’로 비가역적으로 올라가지만, 지나고 보면 실적이 항상 그 목표에 미달하는 것 역시 경직적인 전력요금제도와 무관하지 않다.

셋째, 시장 및 산업구조의 변화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이른바 A·I·C·B·M이 산업에 접목되는 제4차 산업혁명에서 전력과 에너지는 핵심분야중 하나이고 그 한가운데에 수요관리, 재생가능에너지, 저탄소 분산형 발전기술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전력산업과 시장에 이들과 같은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등장할 때 전력산업의 혁신과 믹스 변화가 가능하다. 현재와 같은 전력산업과 시장구조로는 이러한 혁신과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고 에너지 전환 역시 장기간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3가지의 구조적 전환, 계획, 세제, 시장이 바뀌면서 선순환 효과를 내어야 전력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에너지전환도 가능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탈원전이나 에너지전환이란 용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계획의 목표수치가 과감하고 내거는 구호가 혁신적이라도 전술한 계획, 세제, 시장을 둘러싼 제도적 변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그 의미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자는 이보다 ‘시장제도의 전환’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그 표현이 문제의 본질, 나아가 우리가 해야할 일과 방향을 정확히 나타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이 성사되어야 에딩턴의 ‘시간의 화살’처럼 전력부문의 ‘비가역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이니 만큼 옛 성현의 말씀으로 마무리하자. 공자의 뛰어난 제자중 한 사람인 자로가 스승에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에게 정치를 맡기신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답하기를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必也正名乎).”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게 전달되지 못한다. 말이 순조롭게 전달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백번 귀담아 들을 얘기다. 그 동안 우리가 에너지정책과 관련해 붙인 화려한 말과 수사를 생각하면 말이다. 올해에는 ‘에너지 전환’의 ‘정명(正名)’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조영탁(한밭대학교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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