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일면 숭실대학교 교수
황일면 숭실대학교 교수

며칠 전 지하철 환승역에서 유난히 두드러진 붉은색 옷을 입고 요란한 액세서리와 가방, 그리고 노트북과 휴대폰을 드러내며 앞서서 걷던 사십 초반의 여인을 보면서, ‘세상에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임을 새삼 환기해 볼 수 있었다.

서로가 다름은 당연한 것인데, 나의 관점과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비난, 무시, 강압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회질서와 도덕을 해치지 않는다면 그 개성을 존중해주고 용납해줘야 함에도 말이다. 서로 간의 대화와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너무 상대방에게 간섭하거나 개입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모두 다르다. 생김새가 다르고 환경과 생각과 입장이 하나도 같지 않다. 같은 어머니의 배 속에서 거의 같은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라 할지라도 외모는 비슷할지 몰라도 성향과 기질과 생각과 행동이 같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상대방의 의견, 태도, 행동 등이 나와 같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상대방이 나의 생각에 동조해주기를 바라고, 나와 같은 행동을 해주기를 소망하며, 나와 어느 정도가 같은가에 따라 친밀도가 달라진다. 그러길래 예전부터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존재해오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착각 때문에 갈등과 분열과 불통, 불화, 불협화음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석가모니의 탄생시를 표현하며 인용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란 말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선언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우리 모든 사람들이 독특한 하나의 개성을 지닌 개체임을 가르쳐주는 말이며, 개개의 인간은 존귀하며 존중돼야 할 대상임을 가르쳐준 가르침이며,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인식해야 될 상대방 존재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임을 깨우쳐준다.

진정한 인격자는 존엄한 인격을 가진 모든 사람을 그 사람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이다. 나와 다른 모습, 다른 생각, 다른 행동, 다른 생활방식을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배척하고 모욕하고 짓밟아서는 안될 것이다. 분별력 있는 사람은 그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하되 인정하는 사람이지,그 차이를 가지고 무리짓는 데 이용하거나 차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너는 나와 다르다’ 그러니까 ‘너는 틀렸다’라거나, ‘너희는 우리와 다르다’ 그러니까 ‘너희는 우리와 같은 족속이 아니고 우리 편도 아니다’라는 식의 편 가르기와 짝짓기, 분열주의의 행태가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에서조차 의견의 불일치나 다른 입장, 생각, 행동에 대한 관점차이로, 심각한 갈등과 불통 및 분리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사람은 개개인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개체이니, 다른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현실이다.

‘장자’에 나오는 고사 중에 ‘노나라 임금과 바닷새이야기’가 있다. 노나라 임금이 하늘이 내린 길조라 여긴 바닷새를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고기와 술로 대접했을 때, 바닷새는 놀란 나머지 고기 한 점, 술 한 잔 먹지 않고 사흘 뒤에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사물의 규칙을 존중하라는 뜻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개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위주’의 마음에서 출발해 개인의 의지를 남에게 강요하다 보면, 부부 사이에 의견충돌이 생기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간격이 생기며, 친구들 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조직에서도 갈등만 쌓임을 알게 해준다.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좋아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바닷새의 도(道)로 새를 키우라는 노자의 가르침과 함께,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공자의 가르침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사랑하려 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기준으로 이해하거나 사랑하려 할 때에야 상대방이 수용하며 갈등이 없어지고 소통이 이뤄질 것이다. 논쟁이나 토의를 할 때에도, ‘자네 생각이 틀렸어. 내 생각이 맞아’라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감정만 상할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가치와 기준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가치와 도덕과 기준을 중심으로 판단이 이뤄져야 하고, 사람마다 사물을 대하는 방법과 행동양식이 다름을 인정해야 하며, 공유된 가치나 도덕, 행동양식의 기준이 아니라면, 자신의 관점과 가치를 강요하거나 압박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니라고’ 하지 말고, ‘틀렸다고’ 하지 말자.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이해하고 수용해보자. 타인을 인정하고 개성을 인정하는 개인과 사회여야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아니라고, 틀렸다고 하지 말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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