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산변압기 관세 폭탄 배경과 대응
노후설비 교체 임박, 국산제품 경쟁력 의도적 떨어뜨리기

한때 5000억원에 육박하던 대미 초고압변압기 수출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60%가 넘는 무자비한 반덤핑 관세가 현실화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 국제무역관리청(ITA)은 한국산 초고압변압기(10MVA 초과 유입식변압기)에 대해 4차 연례재심 최종판정을 앞두고 있다.

ITA는 지난 8월 예비판정에서 국내 초고압 변압기 4개사(효성, 현대, LS산전, 일진전기)에 대해 60.81%의 관세율을 부과했다. ITA의 4차 최종 판정은 이르면 내년 1월, 늦어도 3월쯤엔 나올 전망이다.

예비판정에서 부과한 60.81% 관세율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대표적인 수출 효자 품목이던 국산 변압기의 대미 수출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반덤핑 관세 부과 조치와 관련, 이승우 산업부 시스템산업정책관과 중전 대기업 임원들이 8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미국의 반덤핑 관세 부과 조치와 관련, 이승우 산업부 시스템산업정책관과 중전 대기업 임원들이 8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됐나= 국산 초고압변압기의 반덤핑 이슈가 불거진 것은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 ABB와 델타 스타, 펜실베니아 트랜스포머 테크놀로지스사 등 3개 기업은 현대일렉트릭(당시 현대중공업)과 효성의 60MVA 이상급 변압기의 평균 덤핑 마진율이 60.20%에 달해 미국 내 관련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며 미상무부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달라고 요청했다.

ABB 등 3개사는 2010년 미국 시장 내 대형변압기 수입량의 38%를 한국이 차지하고 있고2008년 이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자국 제조업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시장 가격 파괴까지 초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격 경쟁력이 높은 한국 제품을 흠집 내기 위한 일종의 해프닝 정도로 여겼지만, 이듬해 7월 미 상무부는 원심 최종 판정에서 효성 29.04%, 현대 14.95%, LS산전·일진전기 22% 관세율을 확정했다.

원심을 시작으로 반덤핑 관세율은 매년 조정됐다. 그나마 2014년 1심과 2015년 2심에선 반덤핑 관세가 낮아지는 추세였다(표 참조). 그러나 2017년 3월 3차 연례재심 최종판정에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현대일렉트릭이 예비판정의 20배에 달하는 60.81%의 관세율을 받으며 직격탄을 맞았다.

◆관세폭탄, ‘노림수’는 무엇= 반덤핑을 빌미로 미국이 국내 변압기 제조 기업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다분히 노림수가 읽힌다.

국산 변압기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입량을 줄이고 자국 기업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뻔히 보이는 의도지만 실제 효과도 봤다.

미국에 수출되는 변압기는 2010년대 들어 2015년·16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감소했다. 2010년엔 4억 달러가 넘었지만 2011년부터 제기된 반덤핑 이슈 때문에 계속 하락해 올해엔 10월까지 약 1억5300만 달러(약 1670억원) 규모에 그치고 있다. 7년 만에 약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특히 지난 3월 3차 최종판정에서 현대 제품에 예비판정(3.09%)보다 무려 20배가 늘어난 60.81%의 관세율을 매긴 것은 보복 성격이 짙다.

국내 기업 중 대미 변압기 수출 1위 기업인 현대일렉트릭을 타깃으로 삼아 ‘시범케이스’로 고관세를 매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지난 2015년 6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발효한 ‘무역특혜연장법(AFA; Adverse Fact Available, 불리한 가용정보)’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AFA는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지 않거나 부정확한 자료를 내는 경우 일종의 징벌적 성격의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를 이용하면 피소업체가 제출한 자료와 통계를 사용하지 않고, 업체에 최대한 불리하게 덤핑마진을 산정할 수 있다.

제도 자체가 조사당국의 자의적 해석 여지를 넓혀놨기 때문에 납득하기 어려운 무차별적인 반덤핑 관세를 언제든지 매길 수 있도록 합법적 장치를 마련해놓은 셈이다.

실제로 이번 4심 예비판정에서도 국내 기업들은 조사과정에서 원가구조나 모든 협력업체 표기 등 도저히 제출하기 어려운 자료를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기조와 미국의 노후 전력설비 교체 등이 맞물려 한국산 변압기의 시장 점유율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AFA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수용 불가능한 수준의 반덤핑 관세를 매겨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상대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가 다분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대응책은 있나= 고율의 관세를 맞은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는 최대치는 미국 정부와 법정 공방을 벌이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도 결과를 보장할 수 없고 이미 발생한 피해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다. 현대일렉트릭도 지난 3월 3차 최종판정 이후 즉각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에 제소했지만,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전기산업계뿐 아니라 화학, 철강, 가전 등 미국 정부의 반덤핑·상계관세 부과조치는 줄을 잇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을 상대로 한 각국의 수입규제 조사는 총 193건. 전체 수입규제 가운데 반덤핑이 150건으로 전체의 78%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중 미국과 인도가 각각 31건으로 1위다.

특히 올해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조사 개시 건수는 지난해보다 60% 이상 늘어난 79건에 달한다. 단순히 건수만 많아진 게 아니라 변압기 사례에서 보듯 규제수위도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기업별 대응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정교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종이 다르더라도 고율의 관세를 판정받은 기업들이나 향후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 입장에선 사례를 공유하고 공동의 솔루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면서 “개별 기업별로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다. 정부 차원에서 무역장벽 대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