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처분장 문제 ‘국민신뢰도’ 제고가 答이다

핀란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공사현장
핀란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공사현장

사용후핵연료는 ‘임시저장’과 ‘중간저장’을 거쳐 바로 처분하거나 재처리 후 처분하게 된다. 임시저장이나 중간저장은 영구적인 대책이 못된다. 이 때문에 사용후핵연료를 인간의 관리 없이 영구적으로 인간 생활권에서 격리하는 영구처분(Final Disposal)이 필요하다. 영구처분 방식으로는 심층처분, 해양처분, 우주처분, 빙하처분 등이 고려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경제성과 안전성 등 종합적인 관점에서 심층처분이 가장 적절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은 국가 별로 에너지 수급상황, 기술수준, 국민적 수용성과 대내외 정치외교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현재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31개국 중 미국·독일·스웨덴·핀란드 등 7개 국가는 영구처분, 프랑스·러시아·일본·영국 등 4개 국가는 재처리 후 처분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그 밖의 국가들은 정책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까지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핀란드가 영구처분장을 건설하고 있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고준위방폐장

2015년 11월 핀란드 정부는 원전 2기가 가동 중인 에우라요키의 올킬루오토 섬에 세계 최초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건설을 승인했다. 2023년부터 핀란드 내 사용후핵연료는 이 시설에서 영구처분될 예정이다.

핀란드의 영구처분장은 최초이자 유일한 건설사례로 참고할만하다. 핀란드 정부는 1983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연구, 조사 및 실시계획 수립 시 지켜야할 목표에 관한 정부의 원칙결정’을 통해 장기 로드맵을 정했다. 1983년은 핀란드의 네 번째 원전이 상업운전을 시작한 다음해다. 장기 로드맵에 따라 영구처분장 부지조사는 부지확정조사(1983~1985년), 개략 부지특성조사(1986~1992년), 상세 부지특성조사(1993~2000년) 등 3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먼저 항공사진과 지형지 등의 문헌조사를 실시해 핀란드 전국토에서 100~200㎢ 크기의 327개소 목표지역을 선정한 후, 기반암의 크기와 지형 등 지질학적 요인과 인구밀도·사용후핵연료 운반 등 환경요인에 관한 조사를 통해 5~10㎢ 크기의 102개소로 조사지역을 좁혔다. 이후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올킬루오토, 헤스트홀메, 키베티 등 5개 지역을 추려냈다. 이어진 안전성 평가를 통해 최종적으로 에우라요키의 올킬루오토를 선정했다.

핀란드는 부지조사 과정에서 후보지를 공모하지 않았다. 국가의 책임 아래 안전한 지역 선정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원칙에 따라 정부가 부지조사를 통해 후보지를 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신 핀란드 정부는 조사지역으로 선정된 지자체에 거부권을 보장했다. 이를 통해 후보지 선정을 위한 사전지질조사에 대한 반발을 줄일 수 있었다.

20년 가까운 논의 끝에 2000년 에우라요키 시의회가 20대 7로 찬성하면서 영구처분장 건설을 수용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2001년 핀란드 의회는 찬성 159명, 반대는 3명으로 에우라요키의 올킬루오토 섬을 영구처분장 부지로 확정했다.

◆문제 해결의 열쇠…‘국민신뢰도’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영구처분장을 건설하는 데 감독기관인 스툭(STUK)의 역할이 컸다. 한국의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스툭은 원전 건설계획에서부터 건설허가, 운영허가 등 단계마다 안전검증을 독립적으로 실시한다. 핀란드 내에서 스툭의 독립적 지위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보니 국민들은 스툭의 정보를 믿고 판단근거로 삼는다. 2013년 여론조사 결과 스툭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83%에 달할 정도다.

스툭은 원자력 안전에 대한 정보제공의 역할도 겸한다.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부지선정 과정에서도 지역주민들과의 소통창구 역할을 맡았다. 시설과 관련해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주민들에 대한 강의나 워크숍을 주관하기도 했다. 특히 잘못된 정보로 인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정보를 비교해볼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스톡의 높은 신뢰도가 빛을 발했다.

정부 높은신뢰도도 영구처분장 건설을 이끈 주요요인으로 평가된다. 핀란드는 노르웨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신뢰도가 매우 높다. 2017년 OECD 발표에 따르면 핀란드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12번째로 높은 국가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핀란드는 부패지수와 사회적 갈등 및 정치적 안정성 등을 종합평가하는 ‘사회통합’ 분야에서 덴마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핀란드는 높은 정부 신뢰도를 바탕으로 영구처분장 등 원자력 관련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고 있다.

경주 중·저준위방폐장을 운영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도 “고준위방폐장을 건설 중인 핀란드와 부지선정을 마친 스웨덴 등의 사례를 보면 정부신뢰도가 높은 국가에서 영구처분장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들 국가의 사례를 미뤄볼 때 우선적으로 원자력 정책에 대한 국민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제고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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