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수 GE 그리드솔루션 부사장
양문수 GE 그리드솔루션 부사장

1982년 7월 울산 방어진에서 시작했던 직장생활이 올해로 만 37년이 지나갑니다. 지금도 방어진은 저에게 고향과 같은 곳으로 언제 가도 정겹습니다.

2011년 4월 어느 날 영국 출장 다녀온 직후 첫 출근날이었습니다.

그 날 일식당에서 점심 약속이 있었습니다. 고객사와 점심을 같이 하면서 향후 협력방안에 대한 기본방향을 정리했습니다.

서로 합의기념 악수를 한 직후 몸상태가 급격히 안좋아졌습니다. 흉통이 오고 있는데 식사도 마쳤으니 자리에 일어서야 할 시간입니다.

같이 나가자는 것을 양해를 구하고 배웅한 직후 동행하신 분한테 부탁했습니다.

몸 상태가 너무 안좋으니 가까운 병원으로 나를 데려다 달라…

그분은 상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급히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로 저를 실어 날랐습니다. 식당에서 병원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분 정도 였습니다.

그 통증 가운데 머리 속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늘은 월요일이고 지금은 근무시간이다. 그러므로 산업재해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산재보험으로 만약의 사태에 가족이 받을 보상은 대략 4년치다. 가족의 경제적인 부분은 회사에서 알아서 책임져줄 것이고 내 영혼은 예수님을 믿기에 구원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나의 생명보다 가족의 안위가 우선이었습니다. 어쩌면 대한민국 남자가 지고가야 할 숙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심근경색이었는데 신속한 조치와 탁월한 의료진 덕분에 골든타임 내 조치해 예후도 아주 좋았습니다.

만에 하나 런던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심근경색이 왔더라면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납니다.

그럼에도 시술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흉통을 느끼곤 했습니다. 정기진료마다 담담의사 선생님께 이야기했더니 심장조영술을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걸리는 시간은 불과 50분 정도이고 오후에 바로 퇴원이 가능하다고 얘기했습니다.

며칠 뒤 심장조영술을 하던 중 관상동맥에 이상이 발견돼 관상동맥 우회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 아버님께서 82세에 동일한 수술을 받으셨고 잘 계시기에 수술이 그리 어려운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12년 9월, 모르면 무식하다고 수술 당일 날 담담한 마음로 수술실로 향했습니다. 후에 들은 이야기는 6시간 걸린 대수술이었고,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는 의사의 전언이었습니다.

입원하는 동안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지만 입맛이 극도로 예민해 짜거나 단맛으로 식사를 거의 할수가 없었습니다.

운동으로 땀을 흘리던 기억이 간절하도록 그리웠습니다. (사실 요즘 땀흘려 운동한 기억이 전무합니다.)

6일 후 퇴원해 약 3주 정도 집에서 요양했습니다.

당시 합작사 설립 협의 최종 마무리 단계였는데 그 날은 아픈 몸을 이끌고 회의장에 참석했습니다.

동료가 요구하는 최종조항 등을 파너트사와 함께 조율해야 하는 업무였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기본적인 합의를 마무리하고 본사 요청에 의해 3일 후 파리로 출장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파트너사에서도 무리인 줄 알지만 제가 참석하는게 최종 마무리 짓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하는데 제 보스는 난리가 났습니다.

통화기 너머로 “나 너 잃을까 두렵다. 너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본사 입장은 완고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는 일단 문제가 없고 파리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회사에서 알아서 조치할 것이므로 문제가 없었습니다. 비행기 내에서만 문제가 없으면 괜찮았습니다. 비행시간은 12시간 정도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하고 장도에 올랐습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은 원만히 마무리됐고 2012년 10월30일 양사는 HVDC JV 설립에 합의했습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18개월에 걸친 대장정 이었습니다. 그사이 저는 한번의 시술과 또 한번의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어찌보면 참 무모하리만치 제 몸을 아끼지 않고 던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 모든 여정을 함께한 동료들 그리고 파트너사 임직원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힘든 과정을 신뢰로 함께 했기에 지금도 우리는 회식 자리에서 당시의 상황을 추억합니다.

직장인으로서 국가전력망 기술협력에 미력이나마 보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왔다가는 ‘직딩’이 아닌 산업계에 족적을 남겼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자랑이고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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