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쟁력 강화와 경제발전 상위목표로 추구하며 원전.석탄 등 기저발전원에 포획
에너지전환 놓고 곳곳에서 마찰음...탈원전 넘어 에너지전환 실행방안 구체적 논의 있어야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정부인만큼 각 분야에서 변화와 혁신에 대한 기대도 남달랐다. 특히 에너지정책은 역대 최초로 대선 정국에서 공약 전면에 부각돼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고 국정 운영의 핵심 어젠다로 부상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각 후보들은 전통적인 전력공급 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데 뜻을 같이 하고, 환경과 안전에 대한 고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봄철 미세먼지의 원인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지목되고, 경주 지진으로 인해 해당 지역에 밀집돼 있는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100% 담보할 수 없다는 국민적 우려가 퍼져나가면서 나타난 현상이었으며, 동시에 현재 우리나라의 기저발전 역할을 감당했던 석탄화력과 원전의 입지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새 정부, 야심찬 에너지 정책 추진

대선 전부터 에너지는 정치권의 화두였다. 미세먼지, 경주 지진 등 국민 안전과 관련된 문제와 기존 에너지 패러다임이 맞물린데다 기후변화대응이라는 전 지구적 대응책 마련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면서 소관 상임위인 당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 외에도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의원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당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사용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선 공약 중 가장 높은 인기를 끌 정도로 국민적 관심도 높았다.

당선 이후 문 대통령은 에너지정책과 관련한 적극적 행보를 이어나갔다.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8기의 가동을 6월 한달 간 중단시켰고, 지난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원전 정책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며 “현재 수명을 연장해 가동 중인 월성 1호기는 전력 수급 상황을 고려해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말하며 본격적인 에너지전환의 시작을 알렸다.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 지속 여부를 공론화위원회가 결정토록 한다는 발표도 이어졌다.

한 전문가는 “이미 대선 전부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한다거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이행을 위해 획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대안 마련은 차일피일 미뤄져 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문 대통령의 석탄화력, 원전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은 그런 의미에서 발전업계에 적잖은 충격을 가져다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했다. 특히 국가백년대계를 좌우할만큼 중요하게 여겨지는 에너지 정책이 정권에 따라 들쑥날쑥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 공공기관 임원은 “전기, 에너지 정책은 정치적 문제, 또는 국민적 관심에 의해 너무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며 “정치권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 부처가 추진하다 안 되면 바뀌는 전력정책의 지속성과 연속성 확보가 절실하다”고 비판했다.

◆탈원전 논의에 포획…중요한 논의 미뤄져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여부의 공론화위원회 결정 등 에너지전환을 천명한 새 정부의 정책은 거센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에너지 정책을 주관해 온 정부의 ‘규제포획’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에너지 분야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그동안 산업경쟁력 강화, 수출확대를 통한 산업경제발전을 상위목표로 추구해왔다.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원자력발전을 육성해왔고, 관련 연구도 대폭 지원했다. 원전은 지속적으로 건설됐다. 원전 관련 건설사, 협력기업들의 성장과 유지가 이어졌다. 수요관리나 신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가격구조 개편, 전기요금 체계 개선이 속도를 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와 에너지사업자 간 규제포획으로 인해 그동안 정부에서는 해당 산업을 확대, 보호하려는 정책기능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규제기능의 상호 충돌 문제가 빈번했다”며 “원전 건설 중단을 필두로 한 환경과 안전을 고려한 에너지정책이 역풍을 맞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전업계의 조직적 대응으로 인해 정부의 에너지전환 의지는 묻혀버린 모양새다. ‘에너지전환을 위해 어떤 해법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탈원전 분야에 집중되며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등 꼬인 실타래가 많은 부분에 대한 대비는 미비하다. 시장의 반응도, 지역·주민 수용성도 아쉬운 수준이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입지 규제는 지자체와 협의를 통해 개선점을 도출하겠다는 산업부와 국토부의 발표가 무색할 정도로 눈에 띄는 성과가 관측되지 않고 있다. 정부-지역 간 엇박자 문제와 수용성 문제가 신재생에너지 보급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이어지지만 업계와 주민 모두 만족할 수 없는 정책만 이어지고 있다.

한 태양광협동조합의 대표는 “업계 안팎에서는 정부 정책과 사회 분위기가 무르익은 지금이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기회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지자체에 권고사항으로 문서를 하달하기보다는 신재생에너지 입지제한 규정을 지침으로 정해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너지전환에 대한 거시적인 논의 이전에 ‘깨끗한 전기’에 대한 관심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기농 식품에 좀더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처럼 친환경에너지를 통해 만들어진 전기에 많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탈원전 논란 ‘시끌’ 신재생에너지업계는 ‘조용’

현재 정부 에너지정책은 원전 관련 이슈로 가득하다. 에너지전환 논의가 탈원전 이슈에 묻힌 꼴이다. 일각에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 지금 당장 모든 원전을 폐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탈원전’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탈원전 이행의 정당성과 실현가능성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가 심각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전기요금 인상, 전력대란 등 탈원전이 가져오는 우려와 걱정을 부각시키며 원전이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는가 하면, 미래 세대를 위해 에너지전환은 필수적이며 우려할만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이어진다. 크게 보면 여야를 나눠 반대토론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하지만 정작 에너지 전환, 에너지 분권의 유용하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는 신재생에너지 업계는 조용하다. 탈원전 주장도 신재생에너지 업계보다는 환경·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태양광, 풍력 관련 기업의 주가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고, 문 대통령이 세부적인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까지 밝힌 상황에서 굳이 의견을 내는건 다른 업계 보기에도 그렇고 부담이 있다”며 “일단은 정부의 정책방향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라고 귀띔했다.

(News&Info)

규제의 포획 이론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조지 스티글러 교수가 주창한 개념이다.

포획을 당하는 주체는 규제자, 즉 정부를 의미하고 포획을 하는 주체는 기관, 기업이나 조직이다. 규제자가 피규제자를 포획한다는 일반적 상식과는 정반대의 이론이다.

스티글러 교수에 따르면 정부의 각종 규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며, 규제권한을 부여받은 규제기관은 규제업무를 수행한다. 이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규제기관은 피규제자가 없으면 조직과 인력이 유지될 수 없다. 규제를 받는 특정 기업, 조직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익을 보호하고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경우 스티글러 교수는 결과적으로 규제기관이 피규제자를 보호하고 그들과 협력하는 곳으로 바뀌게 된다고 주장한다. 규제정책 자체가 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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