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극동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전기처장
반극동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전기처장

1982년 나의 첫 직장의 발령지는 강원도 동해였다. 그 당시 북평이란 지명을 사용하여 북평전기사무소라 불렸으며 관할구역은 영동선 석포역과 승부역 사이에서 강릉까지였다. 그 시절 석포역, 승부역, 양원역 인근 마을엔 한전 배전선로가 없어 철도 배전선로를 이용하여 그 지역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였다. 지금의 '고객 변압기설비의 공동이용'(모자거래)방식과 비슷한 것인데 마을 전체를 타 선로를 이용하여 전기를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전력탁송이라 했다. 한전 배전선로를 구성하지 못할 정도의 오지였던 그 곳이 지금 V-트레인 운행으로 관광명소가 되었다.

내 고향 울진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동해역과 분천역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 길에 기차를 처음 보았다. 북평역 옆을 지날 때 기다란 기차를 보고 감격해서 ‘야! 기차다.’라고 소리쳤던 기억이 아득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곳이 나의 첫 발령지가 되었다. 울진은 철도와 멀리 떨어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1970년대 울진군에서 자체 시행한 지방직 공무원시험에 ‘울진군에 있는 기차역은?’ 하는 문제가 출제되었다고 한다. 봉화군인 승부역은 그 땐 울진군 서면 전곡리였다.(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봉화군 편입) 그런 승부역은 기차를 타지 않고는 갈 수 없는 하늘아래 첫 동네라며 1998년 12월부터 눈꽃열차가 다니면서 유명세를 탔다. 지금은 분천-양원-승부-철암간 운행하는 V-트레인, 백두대간 관광열차가 다니고 있다.

KTX가 운행하면서 전국은 반나절 생활권이 되었다. 하지만 울진은 서울, 대전, 부산 어디서나 아직도 4시간이상 걸린다. 1980년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울진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삼척이나 강릉에서 고속버스를 갈아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철도를 이용하려면 동해역이나 태백역에서 청량리행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과 분천역에서 밤 열차를 타고 영주를 거쳐 청량리역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갈 때 야간열차를 가끔씩 이용했다. 울진에서 버스를 타고 불영계곡을 지나 분천역에 도착하면 저녁 7시쯤 된다. 자정이 넘어 있는 청량리행 열차를 타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때 그 기다림을 해결해 준 곳이 분천역 앞 시골식당이다.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고 빈방에 모여 기차가 올 때까지 쪽잠을 잤다. 낯선 아줌마, 아가씨,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적게는 여섯 일곱에서 많게는 열 서너 명까지 모여 같은 이불을 걸치고 잠을 잤는데 그 광경이 참 재미있었다. 서로 엇갈려 누우면, 아가씨와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함께 하는 날이 있기도 하였다. 갓 사랑에 눈뜨던 스무 살 시절 옆자리 예쁜 아가씨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 쪽잠도 제대로 못 잤을 때도 있었다. 청량리역에서 하행열차를 탈 때도, 새벽 2시쯤 넘어 도착하면 당연히 그 식당 빈방에서 잠을 청하곤 하였다. 울진행 버스가 도착하기 한 시간 전쯤에 주인이 손님들을 깨우면 식당마당 우물에서 세수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한 다음 버스를 탔다. 그렇다고 방값을 따로 받지는 않고 밥값만 내면 되고 이웃집에서 하룻밤 신세지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아련한 옛 추억이 있는 분천역이 2013년부터 KTX의 1/10 속도인 시속 30km로 다니는 V-트레인시발역이 되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하루 열 명 내외의 승객이 수 백 명으로 늘어나고 부근에 식당이 새로 생겨나고 관광버스가 들어왔다. 농산물 시장도 개장되었다. 2014년 12월엔 산타마을을 개장하여 두 달 만에 10만 6천여 명 방문했다. 작년부터 여름 산타마을도 열어 연이어 대박을 터트렸다. 결국 지난해엔 ‘2016년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돼 우리나라의 대표 관광지로 굳혔다. 덕분에 V-트레인 운행구간인 승부, 양원, 철암역까지 떠들썩하다. 그 구간에 트레킹코스 개발과 인근 울진 소광리금강송 숲길까지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고향 울진에 가끔씩 간다. 대전에서 울진을 가려면 영주를 거쳐 분천역을 지나간다. 아! 그 옛날 분천역이 그립다.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내 머리 속엔 아직 그 시절 청량리행 열차를 타기 위해 잠시 묵은 시골식당의 분천역이 떠오른다. 현대화와 개발은 우리에게 새로운 즐길 문화를 주고 있지만 추억과 정겨운 삶의 맛이 사라지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 아! 분천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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