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마다 ‘제각각’ 많게는 조 단위까지 차이…혼란 키울수도

“특성 반영 안된 비현실적 비용” vs “세계적 추세로 볼 때 적정수준”
학계, 해체 비용 대체로 적정…최초 시도여서 비용 증가 가능성도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행이 본격화됨에 따라 원전 해체·방폐물 처리 등을 다루는 원전 후행주기 분야가 각광받고 있다. 쟁점으로 떠오른 건 원전 해체비용이다. 국내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가 해체 작업에 들어가면서 소요비용을 두고 연일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주체별로 내놓은 수치는 산업부 고시에 따른 최소 비용 6437억원에서 2조5000억원까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관련법과 해외 사례를 살피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해체비용 주장의 타당성을 돌아봤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1호기의 해체에 6437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산업부가 고시한 ‘방사성폐기물 관리비용 및 사용후핵연료관리부담금 등의 산정기준에 관한 규정’에 따른 것으로,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은 제외한 금액이다.

업계에서 시작된 해체비용 적정성에 대한 논쟁은 점차 가열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해체비용의 경우 원전 발전 단가에 적용돼 ‘경제성’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만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적정성 여부를 주장하는 양측 모두 2030년 이전에 고리·월성·한빛·한울 등 원전 11기의 설계수명 만료가 예정됨에 따라 고리 1호기의 비용이 향후 원전 해체 사업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천차만별의 수치가 남발되고 있는 현 상황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상황·조건·기준 등이 제각각인 정보는 되레 일반 국민의 혼란을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6437억·1조4570억·2조5000억…제각각 수치에 혼란 ‘가중’

해체비용 수치를 내놓는 주체마다 금액이 다르다는 점은 원전 해체에 대한 논란을 키우는 요인이다. 사례에 따라서는 조 단위까지 비용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개별 사례의 해체비용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금액이 추산된 사회·경제적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최근 가장 큰 논란이 된 사례는 미국 SONGS의 원전이다. 호기별로 약 2조5000억원에 해체 계약이 체결된 이 원전의 경우 일부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비용이 많이 든 사례로 인용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러나 미국전력연구원(EPRI)에 따르면 SONGS의 해체비용이 비싼 것은 사용후핵연료 관리비용이 포함돼 있고, 원전 지하에 매립된 다수 시설물을 철거하기 위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 바로 해군기지로 부지 복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비용 상승의 원인이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2조5000억원은 특정 사례에만 적용되는 이례적인 비용”이라며 “이를 기준으로 일반 원전의 해체비용을 추산하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교수는 “마찬가지로 일본이 총 200조원을 해체 비용으로 잡았다는 점도 후쿠시마 사고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사회의 상황과 조건을 봐야지, 금액만 놓고 얘기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빈번히 인용되는 또 다른 사례는 미국의 버몬트 양키 원자력 발전소다. 지난 2014년 폐로 계획에 착수한 이 원전은 설비용량이 510MW로 587MW급인 고리 1호기와 용량이 비슷해 선행 사례로 주목받았다.

TLG 서비시스에 따르면 버몬트 양키 원전에 들어가 해체비용은 ▲면허정지 등 규제해지 비용(9582억원) ▲사용후핵연료 관리 비용(4319억원) ▲부지복원비용(670억원) 등 총 1조4570억원이다.

하지만 이 또한 한국 사례와 달리 사용후핵연료 처리 비용이 포함된 금액이고, 미국 원전 시장이 한국과 달라 곧장 고리 1호기와 비교하기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민간 사업자들을 규제하고 비용 마련을 의무화하고 있어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며 “기타 비용을 제하고 해체비용만 놓고 보자면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고 부연했다.

◆업계 일각, “특성 반영 안 된 비현실적 비용”

업계 일각에선 산업부 고시에 따른 해체 충당금이 “현실성이 떨어지는 비용”이라고 비판한다. 해체비용이 불변가격으로 정해져 있어, 원전별 설비용량의 차이, 발전부지별 특성이 반영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다.

관련법에 이러한 사항을 담은 조항이 없다는 점도 논란을 키운다.

지난 2012년 정부는 ‘방사성폐기물관리비용 산정 최종보고서’을 통해 원전해체비용은 구성 항목을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체비용은 크게 ▲밀폐관리 ▲철거 ▲폐기물처분으로 구성되며, 각각 2470억원, 573억원, 465억원이 배분됐다. 현재 비용 6437억원은 물가상승분, 처리비용 증가 등을 반영해 지난 2014년 재산정한 금액이다.

하지만 큰 항목 단위로 정보를 공개한 것 외엔 구체적인 비용 산출 기준 등은 명시되지 않았다. 발전소별 특성을 반영하는 세부규정도 없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각 원전별로 설비용량, 부지 특성 등을 반영해 매번 해체비용을 재산정한다”며 “한국도 기존 원전과 신형 원전이 크게는 2배 가까이 설비 용량 차가 있는데, 단일 기준으로 모든 원전의 비용을 추산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대표는 “금액을 너무 낮게 산정해 추후 추가비용이 발생할 경우 국민 세금이 원전 해체에 투입돼야 하는 최악의 상황도 맞을 수 있다”며 “충분한 해체비용을 마련하는 동시에 사고 발생 가능성을 감안해 보험 차원에서 예비비도 추가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은 2000년대 초 연구용 원자로 1,2호기(트리가 마크-2, 마크-3) 해체 시 비용을 적립해 놓지 않아 정부 예산을 투입한 전례가 있다.

아울러 이 대표는 1500억원대로 추산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비용도 해체비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피력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달 6일 제출한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안)’에 따르면 고리 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가능 용량은 562다발로, 영구정지 이후 485다발을 처리해야 한다. 이를 산업부 고시에 따른 다발당 관리비용(경수로 3억1981만4000원)으로 계산하면 고리 1호기의 핵연료 처리비용은 1551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대표는 “국제적인 기준에선 방폐물, 핵연료 등을 모두 처리한 뒤의 완전복원이 ‘폐로(Decommissioning)’를 뜻한다”며 “실제 해체비용을 산정하기 위해선 핵연료 처리에 수반되는 비용까지 계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원자력계, “세계적 추세로 볼 때 적정 수준”

반면 원자력계에선 해외사례를 살펴봐도 6400억원이 적정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에너지기구(OECD/NEA)의 원전 해체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17개 원전의 평균 해체비용이 6289억원이고, 유럽 4개국(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웨덴)의 경우 원전 해체비용은 평균 5471억원이라는 게 근거다.

임채영 한국원자력학회 책임연구원은 “현재 책정된 비용은 해외 사례를 놓고 봐도 합리적인 수준”이라며 “발전부지의 특성, 돌발 변수 등은 필요 시 비용 산정에 반영하면 되고, 물가상승에 따라 비용 또한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관해선 “별도의 기금이 산정돼 처리되고 있는데 문제가 될 게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애당초 설비용량이 해체비용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 지어진 원전들은 1000MW급으로 고리 1호기와 용량 차가 있지만, 기술이 발전해 발전소 규모 자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설비용량과 발전소 규모는 비례하지 않는다”며 “공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부분인데도, 설비용량을 근거로 해체비용이 늘어날 것이란 주장을 펼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 정 교수는 “발전 단가의 경우에도 수십 년이 되는 원전 운영 주기를 놓고 보면 상승폭은 미미할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학계, 해체 비용 대체로 적정…고리 1호기 땐 비용 증가 가능성 존재

학계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국의 해체비용이 세계적인 기준으로 볼 때도 적정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다만 고리 1호기의 경우 첫 번째 해체 원전이기 때문에 일부 항목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력시스템공학 교수는 “세계적으로 원전 해체비용은 건설 비용의 15~20% 수준으로 추산한다”며 “특히 한국의 경우엔 해외와 달리 국가 기반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 비용 수준도, 안전성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또 송종순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해외 해체비용 가격대가 4000억원에서 1조원 사이에 형성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비용은 중간값”이라며 “매년 여러 상황적인 조건들을 반영해 재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적인 부분에선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송 교수는 “해체는 건설의 역순이라 크게 어려운 기술이 필요치 않다”며 “유독 한국에선 이를 비용과 위험성 문제로 엮어 사안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반면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막상 해체 작업이 진행되기 전까지는 소요비용을 속단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정 교수는 “여러 사례를 통해 어느 정도 추산치를 낼 수는 있겠지만, 해체 전에는 정확한 소요비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해체비용이 현실화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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