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도 없고 ESS 이해 미흡...올해까지 ESS 구축해야 하는 상황

정부가 올해부터 공공기관 건축물에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지만 현장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공공기관 ESS 의무설치제도는 지자체, 국공립학교, 국립대병원 등의 건물에 전체 계약전력의 5% 규모 ESS를 설치하도록 한 제도다. 계약전력 용량이 1만kW를 초과하는 건물은 올해까지, 그 이하는 순차적으로 2020년까지 ESS를 설치해야 한다. 산업부는 공공기관 건축물에 ESS를 선제적으로 적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ESS 시장 규모를 키우기 위해 지난 2016년 5월 관련 규정을 개정했고, 올해 초부터 추진 중이다.

하지만 ESS 업계에 따르면 실제 현장에선 ESS 설치가 쉽지 않다. 산업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올해까지 ESS를 설치해야 하는 대상 기관은 약 41곳에 달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지키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공공기관 ESS 보급이 저조하자 한국에너지공단도 최근 공공기관 ESS 담당자와 ESS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며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ESS 업계 관계자는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ESS 의무설치 때문에 문의를 많이 한다”며 “ESS에 대한 지식이 적고, 관련 예산도 없다보니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모 공공기관에서 연락이 와서 현장 분석을 하고, 규격, 설계까지 해줬는데 규정 때문에 조달시장 입찰을 실시했고, 최저가 경쟁에서 밀리는 바람에 남 좋은 일만 했다”며 “기업 입장에선 고객이 도움을 요청하는데 거절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료로 컨설팅을 해줄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ESS 구축사업을 하려면 조달시장 입찰을 해야 한다. 입찰공고를 위한 규격, 시방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공공기관 담당자들은 ESS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전문 업체에 문의하는 게 일반적이다. 업계에선 애초에 설계를 별도 사업으로 진행하든지, 아니면 정부 차원에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사전에 교육을 실시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번 사업과 관련해 공문조차 전달 받지 못해 뒤늦게 ESS 구축에 나선 기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 공공기관 관계자는 “예산도 부족하고, ESS를 잘 몰라서 시간이 더 걸리는 게 사실”이라며 “ESS를 보급해야 하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급하게 밀어 붙이기 보다는 충분한 설명과 지원방안을 마련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 집행이 도리어 ESS 보급을 늦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ESS 의무설치를 추진하는 건 좋지만 현장 상황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공단이 올해 초 공공기관 ESS 설치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긴 했지만 각 건물마다 전기 사용패턴이 다르고, 공간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 적용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게다가 비용이 많이 드는 ESS를 의무 설치하도록 해놓고, 관련 예산은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도 보급을 늦추는 원인 중 하나다. 예산이 부족할 경우 민간투자사업을 유치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민간 업계의 투자를 유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책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ESS에 필요한 리튬이온배터리 공급부족으로 인해 보급은 더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SS를 설치하고 싶어도 배터리가 없어서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배터리 수급이 부족한 원인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지만 단기간에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ESS 업계 관계자는 “ESS 보급을 늘린다고 선언해놓고 배터리 공급이 부족한 지경에 이를 때까지 정부는 뭘하고 있었나”라며 “정부 말만 믿고 ESS 사업을 추진했는데 배터리가 없어서 사업을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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