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야간 달빛기행, 조명과 만나 역사적 의미 더해
남은 공직생활 시민과 직원들 위해 혼신의 힘 다할 것”

“세계 어느 문화재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우리 문화유산을 더욱 아름답게 선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고심 끝에 나온 결과물이 경관조명을 이용한 ‘달빛 기행’ 행사죠. 밤과 어우러진 은은한 조명으로 창덕궁을 부각시키면서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기획했습니다.”

창덕궁 건립 600주년을 맞이해 2010년 처음 기획된 ‘달빛 기행’ 행사는 시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문화 행사 중 하나다. 밤 8시에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으로 들어가서 인정전, 낙선재 후원을 돌아 나오는 2시간의 문화 투어로, 한 달 전에 예약이 마감될 만큼 관심이 뜨겁다. 조화롭게 어우러진 빛과 문화재의 향연은 서울 밤의 정취를 더욱 고조되게 만들어준다.

살아 숨쉬는 5대궁 종묘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창덕궁 야간 달빛 기행 행사에서 조명 하나의 위치와 각도까지 고민한 담당자가 있다. 정규철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 주무관<사진>이다.

“달빛기행 이전에 설치된 조명은 문화재를 밝게 비추데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처럼 조명을 적절히 이용하면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주변 분위기까지 살릴 수 있죠. 청사초롱을 전통 한지를 이용해 만들고 초롱 내부에 설치할 촛불 모양의 조명을 구한다고 인사동과 조명 가게 등을 발품을 팔아가며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시민들이 지금처럼 경관조명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사업자들조차 제품을 만들지 않았던 거죠.”

은은한 조명은 문화재의 풍광을 넘어 각 장소들의 숨겨진 이야기도 비추고 있다.

창덕궁을 대표하는 주합루 권역은 1층 규장각과 2층 주합루로 건립된 장소다. 그중 주합루는 정조대왕이 재주가 뛰어난 신하를 뽑아 학문을 연마하던 장소로 부용지의 네모난 연못은 땅에 사는 백성을,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한다. 주변의 환경은 어둡게 하면서도 주합루와 연못, 섬을 비춰 왕이 바라봤던 밤의 풍경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 창덕궁 후원으로 향하는 입구는 수목에 조명을 설치, 자연 속에서 달을 감상하도록 표현했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영화당과 주합루를 서서히 보이도록 해 600년 동안 잠들어있던 역사를 깨워, 창덕궁을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공개하겠다는 의미도 담았다.

“건물의 상징을 더욱 부각하기 위해 주합루 외관은 3500K의 강한 조명으로 강약을 줬습니다. 영화당과 부용정은 300K 정도의 색온도를 선택해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고요. 우리나라 특유의 기와지붕은 높은 곳에서 달빛이 비치는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역사 속 건물의 상징성을 그대로 나타내기 위해 노력했죠.”

달빛 기행에 한 몸을 바쳤던 정 주무관도 공직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남은 기간 시민과 직원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고 떠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문화재 관련 사업은 성과만 따져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국민 모두의 자산이고 후손들에게 남겨주어야 할 귀중한 역사라는 관점에서 다가가야 합니다. 지자체와 서울시, 정부가 문화재와 관련 사업을 함께 고민하고 실질적인 담당자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달빛 기행을 위해 고생한 직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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