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는 플랫폼, 그 위에 신산업 꽃 피울 것”

“현장에 답이 있다.”

지난해 3월 제4대 스마트그리드사업단장으로 취임한 백기훈 단장의 평소 지론이다. 말로만 현장을 외치는 게 아니라 몸소 현장을 챙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지난 1년간 스마트그리드 사업 현장만 23곳을 방문했다.

“현장을 다니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결과 스마트그리드 추진성과는 희망적이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진행한 실증사업과 기술개발 등을 통해 지능형검침인프라(AMI),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의 보급이 증가했고, 실제로 효과도 거두고 있고요.”

스마트그리드는 기존의 전력망과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해 전기 사용량을 줄이고, 필요한 만큼만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스마트그리드사업단은 전국에 이러한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을 보급하는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백기훈 단장은 “스마트그리드는 산업부가 추진하는 에너지신산업의 플랫폼”이라며 “스마트그리드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고 있어야 기후변화, 4차산업혁명 등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 단장은 정보통신부, 미래창조과학부를 거치며 인터넷, IT, 3D프린팅 등 새로운 산업을 두루두루 경험했다. 추진동력을 얻기 전의 신산업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스마트그리드도 백 단장에게는 또 한번의 도전이다.

하지만 그가 사업단장으로 취임할 당시만 해도 스마트그리드 산업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경제성 문제로 수년간 지연된 스마트그리드 확산사업이 뒤늦게 시작되긴 했지만 성공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많았기 때문이다.

“스마트그리드 산업 정책의 핵심은 단연 ‘스마트그리드 확산사업’입니다. 물론 사업초기에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지연되면서 정책동력이 약화되긴 했지만 지난해부터 8개 컨소시엄이 15개 광역 시·도에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산업부와 사업단 역시 분기별로 민·관 정책협의회를 열어 현장 의견을 수렴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스마트그리드 확산사업은 지능형 전력소비·전력공급 효율화, AMI 기반 전력서비스를 기반으로 지역의 에너지 수요 특성에 따라 편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관이 합동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다. 스마트그리드사업단은 2009년부터 제주도 실증사업, 2012년부터 핵심기기 보급사업을 추진하며 확산사업의 기초를 다지는 데 일조했다. 당시에는 관련 기업이 전무했지만 현재는 사업단과 더불어 스마트그리드 산업을 함께 육성하는 기업들도 탄생했다. 백 단장이 최근 방문한 종근당바이오 경기도 안산공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ESS 융합시스템 보급사업으로 추진된 종근당바이오의 공장에너지관리시스템(FEMS)과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올해 1월부터 상용 운전 중이다. 이를 통해 전력피크, 수요반응 등에 대응할 수 있고, 연간 전기요금 약 1.2%(1.7억원)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매월 정례적으로 스마트그리드 현장을 다녀오고 있습니다. 확산사업에 참여하는 지자체도 직접 방문하고 있고요. 제주도청은 세 번, 광주, 대구, 부산 등의 지자체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죠. 최근에는 한전이 AMI를 설치한 인천의 한 상가를 방문했는데 전년대비 전기요금은 10%, 피크사용량은 13% 절감한 걸 보고 놀랐어요.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2차년도 확산사업을 진행하는 만큼 관련 지자체·사업자 간의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홍보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사업단은 우선적으로 국내 스마트그리드 확산을 통해 성과를 축적한 뒤 국내 기업들의 해외진출도 도울 계획이다. 파리기후변화 협약으로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등에 대한 각국의 관심이 증가한 만큼 스마트그리드라는 플랫폼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

사업단은 국제에너지기구와 청정에너지장관회의가 함께 조직한 스마트그리드 국제협의체 ‘ISGAN’의 사무국을 6년간 맡아 오며 국제적 네트워크도 다지고 있다. 14개로 출발한 ISGAN 회원국 수는 현재 25개국으로 증가했고, 매주 원격회의를 진행하며 각국의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사업단은 사무국으로 참여하며 ISGAN 연차보고서를 만드는 등 국제적 지위를 인정 받고 있다.

“국내 업계는 해외 각국으로 AMI, ESS 등을 수출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사업단도 2011년 ISGAN 초대 사무국을 맡은 뒤 2회 연속 연임에 성공하며 6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입니다. 최근에는 동남아 지역에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 구축사업도 진행 중이고, 공적개발원조(ODA)와 연계한 사업도 추진 중입니다.”

백 단장은 최근 불고 있는 4차산업혁명 바람과 스마트그리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산업과 ICT의 융복합이야말로 차세대 산업혁명이라는 것.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도 기존 기술과 정보통신, 화학 등 유관분야 신기술이 결합해 새로운 산업이 나왔는데 그게 바로 에너지신산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스마트그리드를 기반으로 지능형 수요관리, 분산형 전원관리 등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정부를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정책기조가 등장한 만큼 스마트그리드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업간 융복합을 지원하기 위해 사업단은 상호운용성시험센터를 올해 본격적으로 문을 열고 활용할 방침이다. 각각 설치된 신재생에너지, ESS, 전기차 충전기, AMI 등이 서로 연동해 움직이려면 상호운용성은 필수다. 사업단은 각 기기간 상호운용성을 시험할 수 있는 센터를 제주도에 구축했다.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 추진 과정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상호운용성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사업단은 2013년부터 제주도 실증사업의 인프라를 활용해 ‘스마트그리드 상호운용성 시험센터’를 구축해왔습니다. 현재 시험센터에서는 보급·확산사업에 참여 중인 기업의 기술 지원을 위해 무상 시험을 시행 중이고요. 연내에는 전기차 및 충전인프라 분야 등 시험센터의 시험범위를 확대하고, 나아가 상호운용성 시험 관련 표준 제정 지원 등 스마트그리드 상호운용성 확보를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사업단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마트그리드 업계에서는 여전히 사업단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스마트그리드 산업에 대한 투자와 정책지원 등에 대한 요구다.

“스마트그리드사업단은 2009년 발족한 이래로 ‘스마트그리드 국가로드맵’, ‘제1차 지능형전력망 기본계획’ 및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지원해 국가 정책을 체계적으로 이행했습니다. ‘지능형전력망법’을 제정하는 데에도 지원을 통해 법·제도적 기반 구축에도 기여했지요. 그간의 성과는 단지 사업단뿐만 아니라 여러 관계 기관 및 업체 등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업단은 발족 9년차인 지금도 여전히 재단법인이자 ‘지능형전력망법’상 산업진흥 지원기관 형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업계의 바람은 알지만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확산사업을 추진하는 현시점에서는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앞으로 사업단은 권한과 책임이 격상된 기관으로 발돋움해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을 스마트그리드 강국으로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백기훈 단장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행정학 석사, 숭실대 IT정책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행정고시 32회 출신으로 정보통신부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정보통신융합정책관, 성과평가국장, 정책기획관, 국제협력관, 인터넷정책과장,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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