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역량을 협업으로 보강해 경쟁력 배가’
배전반·변압기·자동제어·조명 등 전기계서도 협업으로 활로 모색

배전반협업체 멤버 중 한곳인 주삼영의 공장에서 작업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배전반협업체 멤버 중 한곳인 주삼영의 공장에서 작업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협업(Collaboration)은 중소기업이 단기간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경영전략 중 하나다.

그러나 그동안 국내에선 동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에 협업문화가 꽃피우지 못한 게 사실이다. 전기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적으로 타 업종, 타 기업에 대해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전기계는 업체 간 협업이 미진했던 대표적인 업종으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문화를 타파하기 위한 시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배전반 협업체다.

지난 2015년 7월 일신전기(대표 이용학)와 주삼영(대표 박동록), 하나테크(대표 정인택), 진영전기(대표 김복식), 동림전기(대표 강봉덕), 금성시스템(대표 정하용) 등 6개 배전반 기업은 ‘배전반 경쟁력 확보 및 사업활성화를 위한 협업 비즈니스체제 구축’을 목적으로 협업체를 구성하고, 중소기업청의 승인(2015년 7월 20일~2017년 12월 31일)을 받았다.

배전반 협업체는 일신전기가 코어기업으로 활동하며, 특화된 전문기술(배출면을 이용한 수배전반 내부 자연대류 열 순환 기술)을 바탕으로 배전반의 R&D, 생산, 마케팅 극대화를 통해 매출 및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을 도모하고 있다.

이에 앞서 구성된 한국전기신기술조합(이사장 박상기)도 개별 조합원들이 수주한 물량을 직접 공동 생산해 조합 이름으로 공동 판매하는 새로운 협업모델이다.

지난 2013년에 고장전력복구 기능을 갖춘 배전반, 분전반, 전동기반에 대해 신기술(NET) 인증, 우수조달물품 지정 등을 받은 바 있으며, 지난해 말에는 ‘양단지지에 의한 내진배전반’으로 성능인증을 획득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변압기 업계에서도 최근 중소기업들이 협업한 제품이 최초로 우수조달물품으로 지정돼 화제다.

하이브리드 변압기는 에너테크(대표 박훈양)와 KP일렉트릭(대표 김호철), 산일전기(대표 박동석) 등 변압기 기업 3곳이 협업해 만든 제품이다.

에너테크가 R&D와 영업을 맡고, KP일렉트릭과 산일전기가 생산을 맡는 형태로 역할을 분담해 변압기 업계에선 유일한 협업체로 볼 수 있다.

에너테크는 원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생산시설이 없어 양산에 어려움을 겪다가 KP일렉트릭과 산일전기의 제조설비를 활용해 시장 공급능력을 갖추게 됐다.

빌딩자동제어업체, 수처리 계장제어기업들은 한국자동제어공업협동조합(이사장 최전남)의 특허 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개발하고 관수 시장 영업을 활성화하고 있는 사례다.

조합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는 빌딩자동제어장치와 계장제어장치 관련 기술로, 특허별로 10~12개사, 전체 32개사가 협업체에 참여하고 있다.

조명업계에서도 제품개발과 영업, 생산, 유통으로 이어지는 획일화된 사업구조에 변화를 주기 위해 협업을 시도한 사례가 목격된다.

대표적인 예가 파인테크닉스(사장 김근우)다. 이 회사는 기존 판매 대리점과 사후관리 부서를 이원화시켰던 구조를 단순화시키면서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협업을 이용하고 있다. 각 지역 내 주요 전기공사업체들과 판매부터 시공, CS까지 합쳐진 네트워크 계약을 체결, 소비자가 모든 서비스를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배전반 협업체에 듣다) 현행 협업지원사업의 명과 암

“협업체에 대한 관리, 수요처의 이해도 높이는 게 중요”

“우리나라도 협업과 관련된 법·제도가 잘 마련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또 중소기업을 위해 새로운 협업지원제도를 만들고, 언론을 통해 여기저기에 홍보합니다. 하지만 배전반 협업체를 운영해 나가면서 느낀 것은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만큼 기존의 협업체나 협업지원사업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2015년 7월부터 배전반 협업체 멤버로 활동하며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용학 일신전기 사장, 박동록 주삼영 사장, 김복식 진영전기 사장은 취약한 사후관리 시스템을 정부 협업지원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배전반 협업체는 전국에서 12번째, 배전반 업계에선 처음으로 구성된 것으로, 지난해 전기조합에서 소기업 공동사업제품 조합추천제도를 활용해 수주한 4건의 실적 가운데 2건이 배전반 협업체의 성과일 정도로 개발, 생산, 판매 등에서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용학 일신전기 사장은 “1년 넘게 배전반 협업체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이런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은 제2, 제3의 협업체를 조직·운영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협업사업 지원에 대한 막연한 비판이나 칭찬 대신 오로지 지난 1년 6개월 여의 경험을 토대로 현행 정부 제도의 문제점과 협업체의 운영효과를 설명하겠다고 밝힌 배전반 협업체의 일성은 ‘정부 협업지원사업 사후관리시스템의 신속한 개선 필요성’이다.

“지난 1년 동안 중소기업청이나 협업사업 지원 전담기관으로부터 배전반 협업체의 운영성과나 애로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연락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실적관리는 고사하고 정부나 전담기관이 협업체 운영과정에 어떤 보완요소가 있는지 파악해야 후속사업에서 이를 개선해 나갈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사후관리가 잘 안 되고 있습니다.(이용학 일신전기 사장)”

배전반 협업체는 그 배경으로 협업지원사업 전담기관의 민간 이관을 지적했다.

과거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서 맡았던 협업지원업무가 사단법인인 중소기업융합중앙회로 이관되면서 사후관리가 약화됐다는 게 협업체의 판단이다.

“협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차원에서 관리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사단법인 차원의 관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부가 기업들의 적극적인 협업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관리를 민간에 맡긴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이용학 일신전기 사장)”

배전반 협업체는 지나치게 까다로운 승인과정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후관리를 엉성하게 할 것이라면 왜 그렇게 승인과정을 까다롭게 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협업체는 외부컨설팅의 도움 없이 기업 스스로 준비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승인이 까다롭습니다. 우리는 아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6~7개월 동안 준비한 끝에 통과했지만 준비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승인규정이 까다로운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김복식 진영전기 사장)”

협업체는 특히 일반 기업들이 자문을 구할 컨설팅기업이나 기관이 적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코어기업(일신전기)을 포함해 대구 업체가 대다수인 배전반 협업체는 중기청으로부터 동아대를 컨설팅기관으로 소개받았는데, 동아대는 대구·부산지역에선 유일한 컨설팅기관이라 이곳에서 컨설팅을 받으려면 신청 이후 1년이나 걸려 다른 곳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고 이용학 사장은 밝혔다.

컨설팅기관의 절대적인 부족은 지방에 소재한 중소기업들의 협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시급히 확충이 필요하다는 게 협업체의 조언이다.

배전반 협업체는 또 영업과정에서 협업사업에 대한 수요기관의 이해부족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며 정부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홍보를 당부했다.

“수요기관에서 협업체에 대해 잘 모릅니다. 관공서에 가서 협업체를 소개하면 ‘직접생산규정 위반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협업체들은 이런 점들에 문제가 없도록 규정이 마련돼 있는데, 관공서 담당자들이 잘 모르니까 여러모로 힘이 들죠.(김복식 진영전기 사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전반 협업체는 중소기업들이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인력난, 자금난, 부지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협업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여기업이 기술개발, 영업, 생산 과정에서 역할을 분담하고, 역량을 집중한 결과 배전반 협업체도 매출과 생산성 향상은 물론 타지역의 업체로 빠져나갔던 지역 물량을 관내에서 소화하는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고 박동록 주삼영 사장은 설명했다.

“과거에 비해 기술이 좋아지니까 그만큼 시장도 넓어지고, 영업력도 강화됐습니다. 특히 배전반은 대표적인 수주업종이라 일감의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배전반 협업체는 공동설계, 공동생산 등이 가능해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하고, 생산성과 업무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서로 경쟁을 벌이다가 협업 이후 기술과 정보를 공유하고, 한 팀으로 움직이면서 각사의 경쟁력도 더욱 강화된 것을 느낍니다.(박동록 주삼영 사장)”

배전반 협업체는 중소기업의 부족한 역량을 보완할 수 있는 협업사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후관리시스템을 개선하는 한편 협업 업체끼리의 인증 공유나 협업체에 대한 수의계약 규정 등 당근책을 보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전반 협업체 참여사 대표들이 협업지원사업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용학 일신전기 사장, 김복식 진영전기 사장, 박동록 주삼영 사장.
배전반 협업체 참여사 대표들이 협업지원사업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용학 일신전기 사장, 김복식 진영전기 사장, 박동록 주삼영 사장.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