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방폐물 최종 처분장을 건립하기 위한 절차가 시작됐다. 공사는커녕 부지선정에만 12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가능하면 외면하고 싶지만 이미 30년간 원자력발전을 하면서 발생한 1만4000t 가량의 사용후핵연료, 그리고 앞으로 발생할 핵연료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다. 이러나 저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는 원자력 발전이 만든 전기를 사용한 것이 사실이고 사용후핵연료는 그 결과물이다.

이처럼 최종 처분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막상 내가 사는 지역 가까이에 고준위방폐물 처분장이 들어서는 걸 반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를 두고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이기주의 보다는 안전하고 싶은 본능에 가깝다.

이런 걱정과 불안감을 해소하고 처분장 건설을 추진해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전례를 보면 처분장 건설도 일방통행으로 진행되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 정부의 처분장 건립 절차는 무엇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 말로는 쉽지만 제대로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빚어진 갈등의 양상을 한번 돌아보자. 신규 원전 건설, 송전탑 건설,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 문제, 사드 배치 등만 봐도 갈등의 뿌리는 소통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정답을 정해놓고 주민들을 설득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꿔왔으면서 이번에는 다르다고 믿어달라는 정부의 주장은 공허하다.

그런 상황에서 산업부는 고준위방폐물 처분장 건설 만큼은 지금까와는 다를 것이라고 확언한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담당자가 바뀌어도 일관성을 잃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주민들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절차의 공정성도 담보한다고 발표했다.

여전히 신뢰하기 힘들다. 지역 주민들은 오죽할까. 소통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보란 듯이 정부가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싶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