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업계 최대의 ‘골칫거리’인 불법·불량전선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사옥 이전 문제로 한동안 시판전선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전선조합이 신사옥으로 이사한 후 최근 시중에 판매되는 HIV전선 22종을 수거해 검사해본 결과, 5개 업체 6개 제품이 기준을 미달하는 불량전선이었다.

전선조합은 산하 공정경쟁분과위원회 위원 2명씩을 1조로 구성, 제품을 수거하러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 결과 불량전선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불량전선 제조는 업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신뢰성을 낮추는 큰 문제다.

최근처럼 업계 전체가 불황으로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는 동 함량을 낮추거나 저질 PVC를 사용하는 등의 꼼수로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이득을 남겨, 제대로 만드는 선량한 업체들의 경영난을 초래하는 시장 교란 행위다.

더 나아가면 국민 안전까지 위협하는 중대 범죄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조합과 회원사들이 자기 비용을 물면서 까지 불법·불량전선 근절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불법·불량제품 제조 행위가 보통 반복적·상습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조합원사들의 경우 불법·불량전선 제조 행위가 들통날 경우 1차 경고 후 2차에 폐기물 부담금을 면제받을 수 있는 자발적 협약에서 제외된다. 기업 이미지 실추뿐 아니라 경영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적발업체들이 추가로 불량전선을 제조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이번 조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자발적 협약을 맺지 않은 비조합원사 중에서 상습적으로 불량전선을 제조하고 이로 인한 차익을 거두는 업체들이다.

실제로 지난 9월 국가기술표준원이 리콜 명령을 내린 4개 전선업체 중 2곳은 조합이나 정부의 시판품 단속에서 여러 차례 적발된 기업들이다.

리콜명령이나 벌금 등에도 이들이 상습적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보다 ‘솜방망이’ 처벌 탓이 크다.

미인증 전선을 판매하거나 허위로 표기하는 불법 행위 시 최고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품질·성능이 부족한 불량전선 제조 시 인증 취소나 정지, 리콜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전선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처벌보다 불법·불량전선 제조 시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관할 부처인 국가기술표준원과 제품안전제도 주관 기관인 한국제품안전협회 등이 제도 개선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가 자발적으로 나서는 이런 상황에서, 국표원과 제품안전협회가 망설일 이유가 과연 있을까. 심하게 곪은 곳이라면, 칼을 대서라도 도려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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