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에 이어 철도, 지하철 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대규모 성과연봉제 반대집회를 벌였다. 노동계와 정부 사이에 소통과 대화, 설득과 타협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이들 노조의 파업을 대화보다는 불법파업 규정, 엄정 대처를 통해 해결하려는 듯 보인다.

성과연봉제가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임직원 개개인의 역량 강화에 도움을 준다는 정부의 입장을 뒷받침 하는 이론적 배경 중 하나는 주인-대리인(principal-agent theory) 이론이다. 대리인은 주인을 위해 존재하고, 주인을 위해 일을 수행한다. 하지만 주인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대리인이 업무에 적합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알지 못한다.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대리인의 입장에서는 감시가 소홀할 경우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나은 선택이 되고, 이 경우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공공기관에 이를 적용해보면 국민 또는 정부는 주인이 되고 공공기관 임직원은 대리인이 된다. 예컨대 주인인 국민과 대리인인 한전 사이에는 전기요금 총괄 원가라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작용하고 이는 곧 한전의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최선의 수단을 성과연봉제라고 판단한 듯 하다. 조직 구성원이 조직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성과급 제도는 정보 비대칭 상황을 통제할 수 있고, 금전적 보상을 원하는 경제적 합리인들에게 차별적인 보상은 최고의 유인이 된다는 생각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뤄지는 것. 나쁠 것 없다.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을 감시해 국민 혈세가 낭비되는 것도 물론 막아야 한다.

문제는 평가다. 공적인 서비스의 제공이 최대 목표인 공공기관의 성과평가의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성과연봉제에는 구멍이 많다. 무엇보다 성과연봉제는 오히려 조직 구성원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주인이 대리인의 성과를 온전히 평가하기도 어렵다. 다른 의미의 정보 비대칭성이다. 제한된 정보로 판단한 개인의 성과는 공정성을 상실하고 왜곡될 우려가 크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반복되는 통제가 공공기관 조직 내로 침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하철 노조의 파업이 진행된 지난 9월 27일, 한 시민이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으로 옥수역 스크린도어에 붙여둔 쪽지가 화제가 되고 있다. “공공기관은 성과보다는 공공성과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그의 목소리가 정부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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