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성 논란·프로슈머 활성화 등으로 정치권·정부 여론 눈치 살펴
소비자단체, “빨리 손봐야” VS 환경단체, “개편 신중해야”

지난 8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전기요금 당정 TF 회의에서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과 공동위원장인 이채익 의원, 손양훈 인천대 교수,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등 TF 참여 위원들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전기요금 당정 TF 회의에서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과 공동위원장인 이채익 의원, 손양훈 인천대 교수,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등 TF 참여 위원들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누진제 때문에 한이 맺혔다. 처음 전기요금 누진제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우리 소비자 단체는 반대했지만, 정부가 경제발전을 위해선 산업용 전기사용량은 줄일 수 없으니 가정용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이후 누진 격차가 너무 크고 가정용이 산업용을 교차보조한다는 불만이 제기되면서 몇 번 개편 논의가 있다가 유야무야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다수 국민들이 요금폭탄을 맞게 된 만큼 반드시 개편해야 한다.”

-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회장

“올해 전기요금 논란은 폭염과 가정용 누진제 완화 문제로 시작됐다. 그러나 누진제 개편 논의는 차분하고 폭넓게 진행돼야 한다. 누진제 완화로 전체 70%에 달하는 전력 저소비 가구의 전기요금이 올라가게 될 것이라는 것과, 과다한 전력을 사용하는 가구에 대한 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점은 차분히 따져봐야 할 주제다.”

-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올 여름 연일 계속된 폭염으로 전기요금 누진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7~9월 3개월간 한시적으로 가정용 전기요금 20%를 인하하기로 결정하고, 전기요금 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TF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단계 및 누진률 축소 방안을 우선 결론짓고, 연말까지 전기요금체계 전반에 관한 개편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전기요금 폭탄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부에 누진제 개편을 강하게 요구했다. 20대 국회에 제출된 전기요금 관련 ‘전기사업법’ 개정안 법률안만 10건이 넘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엔 정치권과 정부 모두 누진제 개편과 관련해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과거처럼 슬그머니 누진제 개편 이야기가 사라지지는 않을 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누진계층 간·세대 간 형평성 논란

올 여름 폭염으로 인해 에어컨 사용이 늘면서 많은 가정에서 요금 폭탄을 우려했고, 이러한 걱정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이철우 의원(새누리당)이 한전에서 제출받은 올해 6월과 8월 전기요금 비교 자료를 보면, 8월 전기요금이 6월보다 2배 이상 뛴 가구는 298만1000가구다. 여기에 6월 대비 전기요금이 5배 이상 증가한 가구도 24만3000가구나 된다.

전기료 증가폭을 보면 2배 이상 3배 미만 증가한 가구가 가장 많은 191만8000가구다. 3배 이상 증가한 가구는 58만4000가구, 4배 이상 증가한 가구는 23만6000가구로 나타났다.

7월과 비교해도 지난달 전기요금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전기요금 누진제 5~6단계에 해당하는 가구는 7월 114만가구에서 지난달 603만4000가구로 6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누진제 완화와 관련해 정치권이 여론의 추이를 살피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형평성 논란 때문이다.

현행 6단계 11.7배인 누진제의 구간과 격차를 완화할 경우 1~2구간의 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

현재 에어컨 보급률은 80%로 매우 높지만, 에어컨이 없는 나머지 20%의 가구는 오히려 누진제 완화에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21일 에너지시민연대 주관으로 열린 전기요금 관련 토론회에서 “누진제 완화와 관련해 이해관계가 생각보다 복잡해 정치권도 여론 추이를 지켜보는 것 같다”며 “하지만 올 겨울과 내년 여름 누진제 문제는 계속 부각될 것이 분명해 어떻게든 개선이 시급하다. 다만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철학적 가치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도 “지금 상황에서 집에 에어컨이 있는 80%를 모두 특권층으로 볼 수는 없어 누진제 개편은 불가피하고, 요금이 오르는 저소득층 가구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전체 전력소비 중 주택용이 13~14%인 점을 감안하면 누진제 개편뿐만 아니라 요금 체계 전반을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요금 소비패턴 반영해야 VS 전기과소비 초래 우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회장은 현재의 전기요금 누진제가 소비패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에어컨 보급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최근 건설되는 아파트들은 가스렌지 대신 전기인덕션을 적용하는 등 점차 전기기기 사용이 늘어나는데 누진구간은 변화가 없어 소비자 부담만 커지고 있다”며 “누진제를 통해 전기사용을 억제하겠다고 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불편하게 살라고 하는 꼴”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반대로 누진제를 완화할 경우 대기 중인 전력수요가 무거운 오버슈트(Overshoot)를 초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홍준희 가천대 교수는 본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누진제가 완화되면 전기온돌, 냉난방 겸용 EHP 등 전기난방기, 전기건조기, 인덕션 렌지, 전기온수기, 간접조명 등 현재 일반용 전기요금을 내는 빌딩에서 주로 사용하는 수요가 아파트로 몰려올 것”이라며 “소득이 많은 계층이 앞장서 가스로 하던 열수요를 전기로 바꿀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로슈머 등 에너지신산업 활성화

정부는 현 정부 에너지정책의 핵심인 에너지신산업 때문에 누진제 개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대표적인 게 에너지프로슈머다. 누구나 전기를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게 시스템을 설계했는데, 현 요금구조에선 비싸게 생산한 전기를 팔수 있는 곳이 없다. 팔수 있는 곳이 있다면 누진제도 5, 6단계 적용을 받는 수용가다.

지금처럼 낮은 전기요금 수준에서 프로슈머가 활성화되고, 향후 판매시장 개방까지 이어지려면 누진 5, 6단계 수용가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창섭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 에너지신산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누진제 완화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프로슈머는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만 적용되고, 풍력이 아닌 태양광에만 적용돼 신재생에너지 확대 보급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요금 체계 개편 위해선 투명한 원가공개 우선

소비자단체와 환경단체, 산업계는 누진제 개편 등 전기요금 체계 개편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위해선 한전이 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주장이다.

양선희 서울YWCA 사무총장은 “값싼 일반용 전기를 사용하는 상점들은 문을 열어 놓고 영업하는데 가정에서는 에어컨도 맘대로 못 켜는 게 정상적이지는 않다”며 “용도별로 원가가 다르다고 하는데 전기요금 원가 산출방식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재성 지속가능경영원 사업전략실장은 “기업들이 과거엔 낮은 전기요금의 혜택을 많이 본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원가 이상의 요금을 내고 있어 더 이상 가정용을 내리고 산업용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며 “정보를 가지고 있는 한전에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첫 번째 과제”라고 말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도 “이번 누진제 논란의 한쪽 측면엔 전기 요금 책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무시한 정부의 책임도 있다”며 “그간 정부는 환경·에너지 단체를 비롯해서 산업계, 소비자, 정치권 등 다양한 이들로부터 전기요금 개편 요구를 받아왔지만 제대로 된 논의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야 말로 원가부터 공개하고, 주택용 누진제로 국한되지 않고 산업용와 교육용, 농사용 등 전기요금 체계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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