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성장 집착 멈추자…질적 성장 추구할 시기”
과잉경쟁으로 ‘부실 심화’…‘기본 룰’ 지키는 분위기 조성 필요

고려전선은 대구경북 지역을 대표하는 전선업체다. 1964년 창립 이후 현 정용호 대표에 이르기까지 3대째 전선제조 한길에 매진하며 품질과 신뢰, 책임의식을 지켜온 역사와 전통이 있는 기업이다.

현재 고려전선을 이끌고 있는 정용호 대표는 차세대 전선시장을 이끌어갈 젊은 인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회계사 출신으로 경제·재무·회계 등에 대한 전문 지식과 풍부한 경험으로 무장한 실력 있는 CEO로 주목받고 있다.

“업계 선배들에 비해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며 여러 차례 인터뷰를 고사한 끝에 뜨거운 어느 여름 날 정 대표를 만났다.

“양적성장에 대한 집착이 위기를 불러왔다.”

정용호 고려전선 대표는 최근 국내 전선업계의 상황을 이 같은 한마디로 진단했다.

“현 전선산업은 양적 성장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20년 전, 제가 전선업계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구조적 개선은 필요했지만, 양적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2000년대도 원자재 가격 상승과 맞물려 업계가 양적으로 크게 확대됐던 시기에요. 하지만 이제 그와 같은 방식의 성장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뉴 노멀’로 대변되는 세계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과 건설·조선 등 대표적인 전방산업의 부진, 전선 가격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인 전기동 국제시세의 급락 등 전선업계를 둘러싼 현 상황이 기업의 양적 성장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최근 전선 제조·유통업체들은 부실로 신음하고 있어요. 가장 큰 원인은 양적 성장에 치우친 과잉경쟁입니다. 무리한 여신과 취약해지는 재무구조, 부실채권까지 과잉경쟁과 도덕적 해이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업계를 상처투성이로 만들고 있어요. 기본적인 룰조차 지키지 않으니 치킨 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이제 익숙한 양적 성장을 버리고 질적 성장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하다못해 신용카드 하나 만드는 경쟁을 하더라도 기본적인 룰은 지켜요. 전선업계도 양적성장을 위해 다른 사람의 파이를 뺏기보다 각자 특화 제품과 고부가가치 제품을 연구 개발하는 등 질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 대표는 “중소기업 간에도 특화제품을 인정하는 시장질서가 만들어지면,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며 “각자 지닌 것에 IT기술을 융합해 신(新) 솔루션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를 위한 선결조건으로는 업계의 자정 노력과 정부·기관의 지원정책 활용 등을 꼽았다.

“업계 차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품질 등에 대한 ‘감시(Watchdog)’ 노력을 강화하는 등 지속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해나가야 해요. 정부 정책이나 공공기관·공기업·대기업 등의 지원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는 노력과 고민이 있다면 더 좋을 겁니다.”

정 대표는 이와 관련 한국전력공사 협력사들이 ‘KEPCO 트러스트 파트너(Trusted partner)’ 프로그램으로 해외동반 진출을 모색하듯, 우수한 기술과 자본을 가진 대기업과 추진력·열정이 장점인 중소기업이 협력해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방식의 상생 협력 모델을 예로 들었다.

“정부와 공공기관도 이 같은 프로그램과 환경 조성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출혈경쟁으로 신음하는 전선업계가 동반상생할 수 있는 물꼬를 틀수 있을 겁니다. 전선조합의 역할도 막중해요. 업체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조율하는 한편, 현실적인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정부·공공기관에 이해시키는 등의 노력을 한다면 전선업계가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