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양수발전소 중 가장 마지막에 가동…국내 전력산업 마지노선
평상시 가동률 10%미만이지만 비상시 투입 가능한 최적의 발전설비
가동 지시 떨어지면 5분 內 6시간 동안 최대 400MW 전기생산 가능

지난 11일 서울의 기온이 36.4도까지 오르면서 전력수요는 8497만kW를 기록했다. 사상 최대전력수요다. 연일 무더위가 이어진 탓에 냉방 수요가 급증했고, 휴가철이 지나면서 산업용 설비들이 가동됐기 때문이다. 이렇듯 수요가 급증할 때마다 양수발전소는 비상이다.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청평양수발전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15일을 기점으로 한풀 꺾인다던 폭염이 언제 그랬냐는 듯 계속되면서 청평양수발전소도 바빠졌다. 16일 국내 전력산업의 최후 방어선을 맡고 있는 청평양수발전소를 방문했다. 청평양수는 7개 양수발전소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가동되는 최종 마지노선이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거나 대형 발전기가 멈출 경우 양수발전의 존재가 빛을 발한다. 평상시 가동률은 10%에도 미치지 않지만 비상시에 투입할 수 있는 최적의 발전설비이기 때문이다.

청평양수발전소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에 있는 호명산에 자리 잡고 있다. 호명산은 4년 6개월간의 지질조사를 거쳐 적합판정을 받은 지역이다. 양수발전소는 엄청난 양의 물을 끌어올리고 내리는 걸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지형에만 건설할 수 있다. 먼저 수자원이 풍부해야 하고, 낙차가 큰 지형, 암반지대로 이뤄져 있어야 한다. 호명산은 이런 조건에 딱 맞는 지형이다.

북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굽이굽이 길을 차로 달린지 30여분, 청평양수발전소가 눈에 들어왔다. 양수발전소 중 유일하게 수도권에 위치한 청평양수는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편이지만 본부는 물을 높이 끌어올렸다가 아래로 흘러내리는 힘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발전의 특성상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발전소 정문에 도착하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한쪽은 발전본부로 가는 길, 한쪽은 지하발전소로 가는 길이다. 지하발전소로 가는 길은 총 길이 1332m의 터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터널 속으로 방향을 알려주는 불빛이 어른거렸다. 경사가 10도 정도라서 얼마나 깊이 내려가는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지만 지하발전소에 도착하자 공기가 서늘해졌다. 이날 바깥 기온은 32도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지하는 20도 내외로 느껴졌다.

지하발전소를 안내해 준 정경숙 청평양수발전소 과장은 “지하발전소는 해발고도에서 350m 아래, 즉 아파트 지하 18층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사계절 내내 기온이 일정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설명했다.

지하에는 거대한 발전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총 지하 4층 규모로 지어진 발전소에는 물을 끌어올리고 발전하는 200MW 규모 양수발전기 2기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터빈, 전력케이블, 물이 지나는 수압터널 등이 펼쳐져 있다.

하부의 물을 상부 저수지로 끌어올리거나 상부의 물을 아래로 떨어트릴 때 사용하는 수압철관은 총 2개가 있다. 직경 3미터가 넘는 철관으로 대량의 물을 순식간에 이동시키는 것이다. 다른 양수발전소는 물을 저장할 하부 저수지, 상부 저수지를 인공적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청평양수는 아래에 청평호가 있기 때문에 상부 저수지만 인공적으로 조성했다. 상부 저수지는 발전소가 위치한 호명산의 이름을 따 호명호수라고 부른다.

청평양수는 낮에 상부 저수지인 호명호에 저장된 물을 아래로 낙하시켜 전기를 생산하고, 심야에 저렴한 전기로 청평호의 물을 다시 끌어올려 호명호에 저장한다. 낙하시켜 생산하는 전기보다 끌어올릴 때 쓰는 전기가 더 많지만 비상시 5분 이내에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신속성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되는 발전소 중 하나다. 청평양수는 가동지시가 내려지면 5분안에 6시간 동안 최대 400M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청평양수에서 생산된 전기는 남춘천변전소, 홍천변전소, 서정변전소로 보내진다.

정 과장은 물을 끌어올리거나 떨어지는 물로 발전할 때 필요한 발전터빈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발전터빈이 있는 곳은 바깥과 달리 굉장히 습하고 더웠다. 터빈 아래로는 보이지않았지만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높이가 5m에 달하는 터빈은 멈춰 있었지만 언제든지 가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정 과장은 설명했다. 취재 당일 다른 6개 양수발전소에서는 발전기가 가동됐기 때문에 청평양수는 호명호에 총 저수량을 가득 채우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김동원 청평양수발전소장은 “요즘처럼 전력수요가 많은 시기에는 전력을 생산한 당일 심야시간에 바로 물을 채운다”며 “덕분에 지난주 최대전력수요 때도 문제없이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청평양수는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두 번째 양수발전소다. 1980년 4월 준공돼 올해로 37년째 가동 중인 만큼 설비용량은 400MW(200MW×2대)로 다른 양수발전소에 비해 작다.

상부에 있는 청평호의 면적은 15만㎡에 달하고, 267만t의 물을 담고 있다.

워낙 주변 경관이 뛰어나기 때문에 청평양수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5년전까지만 해도 지하발전소까지 일반에 공개했지만 대형버스가 지하에 들어가서 돌아 나오기 힘들고, 잦은 통행으로 인해 내부 공기가 악화되면서 중단됐다. 대신 상부에 있는 호명호에 홍보관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호명호를 감상하고 양수발전 현황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에는 약 20만명이 홍보관을 다녀갔다.

청평양수 인근에는 수력 인재양성을 위한 수력교육훈련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7월 준공한 교육센터에는 수력발전과 관련된 각종 모의 훈련실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센터 덕분에 한수원은 수력 부문 인재를 양성하는 데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뛰어난 기동성, 정지상태서 최대출력까지 불과 5분

추가 건설 검토 중이지만 환경 이슈 피할 수 없을 듯

한수원은 현재 전국 7개 지역에서 양수발전기 16기를 운영 중이다. 총 발전용량은 4800MW로 원전 5기에 근접하는 규모다. 국내 총 발전설비용량의 4.9%를 차지하고 있다.

양수발전소는 상부의 물을 떨어트리는 힘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이 때문에 하부의 물을 끌어올려 상부에 저장해야 한다. 전기 원가가 저렴한 심야에 하부 저수지의 물을 끌어 상부저수지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상부에 저장한 물이 사실상 에너지원인 셈인데 국내 발전소 중 수입 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건 양수발전이 유일하다.

양수발전은 비상시 가동해 전기를 생산하는 대체운전 발전소라고 할 수 있다. 전력 사용 현황에 따라 반응함으로써 전체적인 발전효율을 향상시키고, 원전 등 대용량 발전기가 고장으로 정지할 경우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출력변동성이 심한 신재생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고품질 전력으로 전환해 전력망에 연계하는 역할도 한다.

현재 전국에서 운영 중인 양수발전소는 총 7개다. 1980년 최초로 준공된 청평 양수발전을 시작으로 삼랑진(1985), 무주(1995), 산청(2001), 양양(2006), 청송(2007), 예천(2011) 양수발전소가 차례대로 들어섰다.

이 중 양양 양수발전소는 발전용량이 1000MW로 원전 1기와 맞먹는데 낙차 역시 아시아 최대인 819m에 달한다. 낙차가 클수록 발전효율도 높다.

양수발전사업은 당초 한국전력이 담당했지만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따라 6개 발전회사로 분사됐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1년, 양수발전소의 역할은 수익보다는 계통안정에 더 가깝다고 판단하고 한수원이 통합 운영하게 된다. 한수원은 내부에 수력본부를 신설했고 현재는 그린에너지본부로 명칭을 바꿔 양수발전소를 운영 중이다.

양수발전의 가장 큰 장점은 기동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정지 상태에서 최대 출력에 도달하는 시간이 불과 3분. 원전이 24시간, 석탄화력이 7시간, 복합화력은 1시간 30분이 걸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다. 이 때문에 급격한 부하변동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순환정전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양수발전소는 즉각적으로 전기를 생산해 순환정전의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현재 한수원은 추가적인 양수발전소 건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양수발전은 건설 기간이 길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산 위에 지어야 하기 때문에 환경 파괴로 인한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청평양수발전소의 상부저수지인 호명호수
청평양수발전소의 상부저수지인 호명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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